2020년 1월 13일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것들은 우리를 아주 높은 행복 위로 데려다 놓기도, 혹은 아주 깊은 실의에 빠지게도. 중간을 겪은 적이 있다면 알려주었으면.
여러 가지 일들이 잠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재미있지도 않은 일들이. 그러나 그들은 새벽잠보다는 무겁다.
내일 뭐하는지, 일주일 후에는 누구와 있을지. 일 년 뒤에 내가 어디에 있을지 나는 결코 특정할 수 없지만 미지의 그 어느 날이 오더라도 그날에 또한 욕심이 나를 집어삼키겠지 라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는 밤. 오늘도 내일도. 해가 지나도.
대상이 존재하고 욕망이 내재하기에 불안함은 엄습했다. 나의 깊숙한 어딘가에 오래전 수납된 기억이 이제는 입지도 못하는데 옷장 속 파묻힌 파자마처럼 한 자리를 메꾼다.
내 두려움은 어떤가. 스스로 대상을 특정하지 못할 때 두려움은 자세를 추스르던 불안을 도로 앉히고 직접 일어선다.
내가 흰 색깔을 가진 말이고, 지금 겪는 시간이 검은 줄무늬를 칠해가는 일인지. 사실 나는 검은색 말인 채로 살아오다 흰 줄무늬를 새겨 넣게 된 것인지. 흰색, 검은색, 흰색. 검정이 먼저였나? 아닌가, 흰색이 나의 본디 바탕색이었나?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긴장하면 손이 차갑게 언다. 핏기가 가시는 느낌이 든다. 때때로 어떤 긴장은 내 뒷덜미를 뜨겁게 하며 눈이 빠져나올 것만 같게 한다. 나의 목구멍이 양말처럼 거꾸로 뒤집히는 느낌.
경험의 기억에 따르면 새하얗게 변한 손에 핫팩을 쥐어도, 쉼 없이 주물러보아도 긴장의 팽팽함이 끊어지거나 스스로 녹아 미지근함으로써 느슨하게 걸쳐지기 전에는 도통 피가 돌지 않았다.
가스레인지를 인덕션 레인지로 바꿨다. 인덕션은 온도제어가 자유롭더라. 가스레인지는 약불 중불, 그리고 가장 센 불. 이렇게 세 개뿐인데. 인덕션은 무려 아홉 단계나 있었다.
9번의 단계. 아주 뜨겁다. 라면을 끓여도, 계란을 올려두어도. 금방 퍼지고 금방 완숙이 되어버린다. 난 설익은 라면, 반숙 프라이를 좋아한다. 6번쯤, 아주 은은해서 기다리면 원하는 익기로 음식을 내준다. 하지만 나는 항상 단계를 9번으로 맞추어 놓는다. 급한 성격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만.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도, 너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은근한 온도에서 편히 기다리길 바랐다. 이 마음이. 이 편안함이 나를 지배해주기를. 파괴적으로 내 삶을 가둬주기를. 하지만 모두들 삶의 기점에서 까맣게 타버린 냄비를 받아 들게 되지 않았는가. 우리네 삶에는 안전을 위한 비상 종료 시스템이 흔치 않으니까.
나는 앞에 거울을 두고 아직 잘려나가지 않은 팔을 비추어 보며 이미 잃은 쪽 팔을 위로한다. 손은 사라졌지만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해 본다. 팔꿈치는 없지만 한 번 굽히려고 해 본다. 내 뇌 속 신경과 이미지는 거울에 비친 움직이는 팔에 만족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그것은 관념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
내가 대여섯 살 때쯤. 어린이집에서 생긴 오른쪽 눈 옆의, 광대 위의 작은 흉터는 거울이 없으면 나는 절대 볼 수 없다. 여긴 거울이 모두 깨어진 곳. 남이 봐주기 전에는 나는 상처의 기억만 가진채 흉터의 존재도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