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9일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사랑하기 전에 온도를 낮춰야 합니다. 탑승하기 전에 한 걸음 물러서 주세요. 좌석 벨트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벨트를 착용하고 계세요. 문이 여닫힐 때 발 밑을 조심하세요. 난간에 몸을 기대지 마세요. 회전문이 돌 때는 손을 대지 마세요, 회전문이 멈춥니다.
언젠가 편지를 모아둔 상자를 열어 그 안을 살펴보았을 때. 뭉쳐있던 실뭉치는 풀어헤쳐지고 그저 미소가 남는다. 허탈해서던 공허해서던 중요하지도 않고. 오랜만에 보면 남의 일인가 싶기도 해서 우습다. 감정 기억은 사실을 덮는다. 양가감정의 끝과 끝에 서 있던 표지판은 넘어진다. 그 길을 지나는 이가 손수 세우기 전엔 쭉 넘어져 있을 노릇.
당연했던 일들을 대답해야 하는 상황들이 온다. 왜 외출할 때 신발을 신는지, 왜 연락을 미리 주어야 하는지. 지나쳐버린 시선에 담긴 말. 믿음을 주는 방법이 말 이전에 적극성을 띈 행동임을 알려준 것은 엎어져 깨어진 유리잔 안에 들어있던 이야기였다.
수단으로써 날카롭게 날이 선 칼을 들어 올린 사람을 보았을 때 나는 경외심을 가졌다. 온갖 원치 않던 것들을 직접 뒤고 가는 여린 팔이 보기와는 퍽 다르다. 저 칼의 날은 사랑도 쉽게 베어 스러뜨려 버릴 정도의 예리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아! 나도 저 강단을 가질 수만 있다면.
오늘도 책임감은 나를 절대 죽지 못하게 했다. 칭찬해줄 일은 아니라 모른 척 어물쩍 넘어갔다. 책임감은 늪과 같아. 많이 가진 자는 고결한 기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고결성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한다. 연명하고 있음을 기특하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그곳에 있다. 어김없이 왕관의 무게는 목을 부러뜨리고 피를 흩뿌린다. 내 발로 걷고 또 걸어 닿는 모든 곳이 붉게 물든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굴러 떨어져 여기저기 부딪히고 멍이 들었으나 스스로에게는 다정하게 물었다. 슬픔에 부딪힌 곳은 없는가? 복을 볼 수 없는 난시. 혹은 눈동자 바로 앞의 글자인지라 읽지 못하는.
오랜만에 마주친 옛 마음들. 그 이후의 나를 스스로 단죄하길, 그러다 누군가 속죄해주길. 내 책임감은 고귀하나 물러 터졌다. 너무 자주 손댄 홍시처럼. 추수를 갓 해 딱딱하던 단 감은 온데간데없고 애초에 무르게 태어난 사람처럼.
마음 한 장 덜 넘기고 뜻을 밝히기를 잘했다. 그건 칭찬할만한 일이야. 물러서서 이야기하길. 도어체인 사이 틈의 음성으로. 그 편이 보기에 좋으니까. 남들에게 보이기 좋으니까. 딱 문 틈 사이의 영역만을 보이라. 너희 눈 속에는 미래의 내가 있으니까. 이기심이 뿌려진 세상은 이기심을 수확하기 마련.
아직도 로맨스 영화는 어색하고 불편하다. 기껏 용기 낸 게 어설픈 로코 드라마를 켜놓고 보는 둥 마는 둥. 그림을 그리며, 청소를 하며 귀로만 듣는 일. 평생 다시 있지 않을 시선과 손가락, 내가 산꼭대기 가장 높은 곳에 직접 올라 연결해 두고 온 짚라인. 아무도 타고 내려올 일 없다고 정의하고 고생을 잊었다.
1996년의 나. 복이 없던 박복한 아기,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한 때 나는 너희가 차라리 나를 울렸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