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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May 27. 2021

회수는 당연한 것. 내 것이 아니므로.

2018년 3월 8일

새벽 5시.

결국 내가 쉽게 잠들지 못함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패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들에 잠겨있는 시간이 결코 싫다는 것도, 그 시간을 부정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시간들이 앞으로도 계속되면 곤란한 것은 사실이다.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 이제는 썩 달갑지는 않다. 감정을 떠나 이제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여태껏 삶을 지나오면서 부끄럽게 여겼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일이 있었다. 남에게 사랑받는 일. 당연하다고 여겼기에 그랬었다.


나는 사랑받는 일에 있어서는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행복했고 그에 또 당당했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구하고 혹자는 그것을 구걸하고 있을 때 그들이 원했던, 누군가가 나에게 쉽게 주었던 감정은 제삼자였던 그들이 한 줌이라도 쥐고 싶었던 것. ⠀⠀

⠀⠀⠀⠀⠀⠀⠀⠀⠀⠀⠀⠀⠀⠀⠀

하지만 믿기 힘든 가벼움으로 인해 생각할 수 없던 그것의 무거움.


그렇기에 내가 사랑받은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연히 가져야 했던 감사함 또한 모르던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 봤을 때에 나는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갈구하고 결국 스스로 제 풀에 지치는 모습이 내가 비웃고 우월감의 대상으로 삼던 그들과 다름이 없었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 더 비참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


내가 받았던 사랑은 내 것이 아닌 상대의 것이었고 결국 그것들은 돌아가야 하는 곳으로 돌아갔다. 내가 생각해도 진정 그들이 가야 하는 곳으로 갔다는 생각이 들 때가 훨씬 많다. 나는 역시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 늦게 감사하는 법을 배웠고 이미 감사를 전해야 하는 대상은 그 어떤 말도 의미를 갖지 못하는 곳으로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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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중요한 것들을 알 준비가 아직도 충분하게 되지 않았고, 그 부끄러움에 낙담하고 있는 시간들이 스스로를 잃게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높은 곳에서 물속으로 떨어졌을 때 한순간 가장 깊은 곳으로 잠겨버린 찰나의 시간, 요즘이 바로 그 순간들일 거라 생각한다. ⠀⠀⠀⠀⠀⠀⠀⠀⠀⠀⠀⠀⠀⠀⠀⠀⠀


앞으로의 새벽도 이렇게 살아질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의 안갯속에서 아침이 스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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