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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Nov 20. 2021

나는 비록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2020년 4월 30일

'친구란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위대한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명망 높은  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겐 무한도전에서 처음 들려와 오히려 실소를 자아냈고, 즐거움 뒤에 숨어 마음 안에 잠자코 들어앉아있었다. 깨닫기 전엔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 걸쳐진 .


처음 겪어 대처법을 몰라 허둥대던 혹한의 당황 속에 놓였을 때, 자그마한 힘에도 파편이 되어 산산이 흩어져버릴지도 모르는 순간을 맞이했을 때. 나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던 때. 녹이지도, 깨뜨리지도 않고 나를 염두하고 유념해준 이가 누구였던가,

삶의 척력에 밀쳐져 질식하는 나에게 소매가 축축이 젖는 것을 개의치 않고 손 내밀고, 항상 꼭 붙들어 끌어당기는 인력의 주인이 누구였던가,


삶에 미처 스며들기도 전에 탈락해버리는 관계의 숱한 자음과 모음은 굉장한 스트레스였던 모양이다. 얼굴은 떠올라도 매치되지 않는 이름, 함께한 장소를 되짚어보아도 옆자리의 얼굴은 비어있어 특정하지 못한다. 그런 척박해진 마음이 비틀대며 찾아가면 항상 깊이 내재하여 쉬던 자모는 먼저 나와 반긴다. 버선발은 아닐지라도 급하게 신고 나와 구겨진 뒤축에 괜스레 웃음이 난다. 실소가 아닌 꽉 찬 웃음이.  


존재만으로 삶을 풍부하고 감미롭게 하는 것들. 거슬리는 잡음 없는 담백한 플레이리스트와 스피커, 포근한 향기를 머금은 푹신한 쿠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을 후의, 일출 전의 쪽빛 어스름. 얼음을 잔뜩 넣은 음료. 흐름에 맡긴 유연한 고갯짓이  편안함을 이미지로서 뇌리에 그대로 전사한다. 프린팅의 모양새가 각각 다른데도 융통적인 그대들을 보며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


존재의 증명을 맹목적 지향점으로 삼아 살아가는 일. 끊임없기에 지루한 그 일의 무료함은 존재함으로 위로하는 내 삶에 등장해 이미 자신들의 가치를 낱낱이 증명한 이들에 의해서 해소된다. 일치하기에 행복했던 적이 있던가? 오히려 달라서, 새로워서, 그 새로움이 일치가 아닌 일소로 순간순간, 매일매일 존재할 때 행복했다.


네 특권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책무, 소임, 과업 따위의 말들을 좋아한다. 오히려 리워드, 베네핏, 프리빌리지. 그 눈밭 위의 눈 뭉치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눈 뭉치는 정체성을 불려 눈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일을 어리석은 것이라 터부시 하던 나의 귀에 직접 들려주었다. 고맙다. 고맙다의 어근인 '고마'는 신, 혹은 존경의 의미를 담아 상대를 높이는 말. 이 글에서 상정한 '너희' 에게 나는 정말, 언제나, 몇 번이라도 개의치 않고 고마워.


'ㅜ'에서 'ㅐ'로 향하는 볼링. 우정, 애정.

우정, 애정. 나의 같은 고마를 가진 눈송이의 모임. 곱씹을수록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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