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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Nov 22. 2021

요새는 눈 밑이 자주 떨린다.

2020년 5월 1일

넌 5월의 첫날부터 또다시 낭자하고 요란하구나.


속이 뒤틀린다. 엄습한다.라는 표현을 쓰면 딱 알맞은 느낌으로. 기어오르다? 뭐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오대수의 꿈속에서 그의 몸을 덮던 개미떼에 공감하는 그와 그의 딸처럼.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마음, 신경조차 쓰이지 않게 하려 앞꿈치로 조심하며 걷는 깨금발. 이해타산적인 내 입장에서는 자기 파괴적이고 희생적 사랑의 태도가 전혀 달갑지 않다. 그저 갚아야 하는 하나의 인과와 숙업일 뿐. 이젠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원망이 나타나면 즉시 그의 눈을 뽑기로 했다. 그래야 원망의 대상을 찾을 수 없을 테니까.  


기분에 찬물을 끼얹은 듯이 정신이 번쩍한다. 몸이 물리적 스위치를 끄기 전까지 전원을 끄지 않는 정신은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나조차도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게 움직이도록 지시한다. 내가 키를 쥐고 있으나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린다고 해서 이 삶이 옳은 편을 향해 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꼭 두 명의 나로 분리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죽어서 발 밑의 흙이 되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괴물은 그저 자취를 감추는 법을 꾸준한 외압에 의해 익혔을 뿐이었다. 도저히 삶에서 떼어내 분리해놓을 수도, 죽여 매장해 버릴 수도 없다. 그저 난 나무 기둥 뒤, 풀숲의 그림자에 숨어 잠시 시선을 피하는 방법 외엔 별다른 상책이 떠올리지 못했다. 강렬하고 타는 듯한 그 응시. 두개골의 뒤편이 뚫어지는 듯하다. 경추의 시작인 목덜미에 또다시 날붙이를 쑤셔 박는다. 나를 모조리 연소해도 사라지지 않는 그 응시와는 대조적으로 그날은 너무나 시리고 차갑고 얼어붙은 채로 내 목을 돌리지도, 숙이지도 못하게 한다. 그저 두 눈은 그 상대의 눈 속 심연을 들여다보는 선택지뿐이다.


당연히 행복할 수 없지. 내가 먹기 원했던 산뜻하고 싱싱한 느낌의 것들은 산지에 가야만 했으니까. 인스턴트스런 삶에서 푹 고아 삶은 부드러움을 원하다니! 너는 그저 균일한 맛과 질을 가진 탄내 나는 음식을 받아 들라. 그것이 삶을 이끌어온 나라는 기계가 마침내 내뿜는 매연이요, 동시에 텁텁한 입에서 퉤, 하고 뱉어낸 설익고 비린 일상의 굽기를 도저히 삼키지 못하게 한 조리법이다.


즉석과, 싱그러움. 비슷하며 얼마나 다른 뉘앙스를 내포하는 사용처를 가졌나. 나의 삶은 정말, 절대로 갓 잡은 생선이 아닌 3분 뒤에 전자레인지에서 꺼내면 완성되어 있는 레토르트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려운 것인가. 기여코 꾸역꾸역 버틴 결과가 이런 것이라니! 내용물을 취하면 오히려 번거로운 분리수거만 잔뜩 있는 이 느낌을 기어이, 기어이 또 받아내다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글은 재차 읽어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준다. 때로는 이롭게, 때로는 해롭게.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이제는 아는 단어가 바닥나고 표현이 바닥나버려서 나의 감정이나 감상,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조차도 규격화되어 글로써 모조리 쏟아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접하는 미디어와 매체는 나에게 매번 새로운 감상문을 쓰게 하고 그것들은 감정과 이성의 대변자를 자처한다.


나사 빠진 사랑조차 빠져버린 삶은 보기보다 윤택하지만 기댓값은 이런 게 아니었다. 쓰레기장에는 일반의 시선으로 쓸모를 가늠하기 어려운 쓰레기가 있고 백화점 진열대에는 자신을 뽐내는 상품이 스팟라이트를 받으며 놓여 있는 것이 우리의 이념 아닌가. 선을 넘지 말고,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하는 시간에 있는 것.


쓰레기장의 컴퓨터를 분해해서 부품 속 작디작은 금을 빼내어 모아 부가가치를 창출하길 바랐던 어리석은 나. 노력으로 행하고, 기다려 얻을 수 있는 금괴가 아니다. 적은 양, 아니 적은 양의 적은 양을 모아 모아 금괴를 만들려고 했던 나.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내가 열 수 있는 금고 속 금괴가 아닌 모래 속 사금이나 캐려고 하는가? 스스로 매일 질문한다. 왜 사람은 파멸을 자행하는지. 왜 비참함의 담장을 넘도록 준비된 나무 사다리를 당장의 추위를 이기기 위해 잘라 땔감으로 써버리는지!


매끄럽게 해결되지 않는 날도 숱하게 있었으나 역한 마음을 깨끗하게 토해내고 나면 속은 한결 나아졌다. 대체 삼킨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매번 힘겹게 게워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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