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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Dec 01. 2021

뜨거운 논쟁을 즐기다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되다.

2020년 6월 7일


정서적 고아, 부지불식.

방심할 수 없게 하는 이 삶이 진절머리 나게 싫다. 마음을 놓고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삶은 그 편안함에 대한 대가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요구한다. 전역 후에 한시도 마음 놓지 못한 채로 전공에 매진했고 파트타임을 구하고, 사람을 만남에도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던 소모적인 내 모습은 방심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중의 하나. 뭐 하나 허투루 쓸 수 없었고 부족했기 때문에 내가 겨우 모아두었던 것들의 물꼬를 누군가 여는 행위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로 여겼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작은 것만으로 배운 이는 큰 것을 가진 자 앞에 섰을 때 나에게 불가피한 비참함을 가르쳤다. 결과적으로 거울 속 나는 현실의 나를 양분 삼아 본인의 열정을 태운다.

새벽이 짧아지는 여름이 온다. 좋은 건지 싫은 건지 특정하기 전에 또 지나가겠지만 책의 두께에 머뭇대는 손길과 읽기 시작하면 결말을 한시라도 빨리 알고 싶어 멈추지 않고 페이지를 넘기는 상반된 손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한 비유가 되려나. 요새는 내 감정을 특정하기가 어렵다. 좋기도 하면서 싫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한다. 비슷하지만 상반된 두 개의 감정이 나란히 나의 앞에 섰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고르는 쪽은 제삼자의 시선에서는 부정에 가까운 것.

관계에서 형성된 믿음은 상호작용을 지배하고 유일하게 지탱하는 기둥과도 같은 것인데 나는 자꾸만 의심하게 된다. 그러한 작용들 사이에서 간절해 본 적이 마땅히 없는 것이 이유였을까. 하늘에서 살며 땅에 들르는 창공의 매가 어찌 날아본 적 없이 고개 숙인 뚜벅이들을 이해할 것인가. 아. 한 번이라도 그 매의 시선을 가져다 쓸 수 있다면,

나의 존재감을 자신의 테이블 위에서 애써 거두려는 사람들을 종종 목도한다. 내가 굽 높은, 눈 높은 이들에게 후려치기 당한 것처럼 내가 그들의 삶에 툭 떨어뜨린 한 방울의 잉크가 물의 투명도를 순진함과 멀어지게 만드는 건가, 본인의 본질이 내가 준 무언가 때문에 흐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겐 이제 호감이 아닌 즐거웠던 오염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한쪽의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오는 놓아버린 권리 속 슬픔까지 생각해줄 여유가 없다. 그들은 더 좋은 나라의 국적을 선택하고 나는 비자를 내주면 그만이다.

정말 필연적 이게도 내가 무너지는 날들이 오면 삶은 반드시 그에 걸맞은 폐허가 될 환경을 함께 준다. 건강의 부재. 가정의 불화, 지인과의 불협화음. 해야 하는 책임이 커다란 일들. 정신적 피로 따위의 것들을 버텨 내다 보면 그런 것들을 보상받으려 무모하게 사용한 카드 할부가 남는다. 신용카드는 참 편리한 물건이다. 세상에 태어난 책임과 대가를 온몸을 부딪혀 치르고 나면 사람들은 비 합리적인 소비를 저지른다. 합리적이지 않은 일은 즐겁다. 배덕감이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즐거움이 된 나는 함께 그 비합리를 만끽한다.

비합리적 경험은 상관도 없는 일에 일일이 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머릿속에서 정리해두려 했던 자신을 한심하게 느끼게 했다. 알맞은 자리에 수납하기 위해 고뇌하는 시간들이 낭비되어 무용하게 버려진 재료처럼 느껴진다. 자리가 없다면 굳이 값진 것들을 밀어내고서라도 마련하려 했다. 밀려난 귀중품은 여유 없는 좌석의 협소함에 불편을 호소한다. 너와 나의 원죄는 다름 아닌 가능성이었다. 늘 목격한 것은 혼자라 속상했지만 다른 곳을 보는 너와 나. 어쩌겠는가.

정서적으로 고립된 시간은 외로움을 동반했다. 그 느낌이 외로움임을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누군가 '많이 외로웠겠다.' 하고 말해주었을 때. 숱한 시간 동안 빈번하게 감상한 선율이 우울의 독무대가 아니라 외로움을 동반한 이중주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에 고아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자격을 잃은 자라는 것을.

 번도 완전히 마른 적이 없는 음습한 섬유에는 군데군데 거뭇한 곰팡이의 흔적이 생긴다. 적신 이도 건조하려 노력한 이도 검은 반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햇빛을 쬐여 원래대로 돌릴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서로 미루는 사이에 해는 떨어졌고, 달이 휘영청 밝게 떴다. 달의 빛은 해로부터 왔지만 곰팡이는 달빛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합의점은 습기에 여지를   꿉꿉하게 마르는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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