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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Nov 30. 2021

인류가 첫 양가감정의 대상으로 삼는 이

2020년 6월 4일

피로함도 우울이 휘두른 주먹에는 머리통을 맞고 잠깐 기절해버린다.


기어이 남은 우울이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오면 나는 꼼짝없이 누워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묵혀두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다 끝마칠 때까지 그는 다시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가 전해주는 폭력적인 말과 상스러운 표현들을 겨우 읽을 정도로 다듬어 가까스로 글에 욱여넣고 나면 우울이 맡겨놓은 나의 할 일도 끝난다.


잠깐의 기간 동안 재잘대는 입을 틀어막은 건 직접 냈던 용기의 산물이다. 너희가 도와준 것이 하나도 없는, 내가 아니면 하지 않았을 과한 일. 피해자라고 여기는 시간은 길어졌고 이제 내가 피해자가 아니면 안 되는 삶이 지금의 나를 감싸는 피막이다.


지나온 주말의 대화가 머릿속에서 맴돌아 주중의 기분을 망친다. 직접 선택해서 보는 경우가 드문 로맨스 영화를 즐겁게 보던 기분은 금세 엉망이 된다. 설명하기 힘든 역한 기분이 들어서 약을 괜히 끊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당시엔 쓸데없는 감정을 껌 칼로 금방 떼어버릴 수 있는 내가 그대로 무기체가 되어버릴까 두려웠지만 사실 그 기계적인 결정력이 마음에는 들었던 것.  


부모가 온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 때가 내 삶의 첫 번째 알을 깨고 나온 순간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당신들과 나는 개별적인 객체이며 나의 평가기준에 당신들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낫지 않는 상처를 주는 것이 나의 목적지라고 생각될 만큼.


그러나 사람은 획득 가능한 물질로만 구성된 기계가 아니다. 객체로 존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절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몸의 어딘가에 자리 잡는다. 외장 메모리로 옮겨 담아 그대로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고통을 당신들이 겪었으면 좋겠다. 좋은 게 좋은 것인 당신이. 미숙했던 그 시절에게 직접 전해주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나의 기질은 천성적인 것이다. 부친은 그렇게 믿기로 선택한 듯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많은 것들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테니 당신에게는 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반대하기를 좋아하며 이죽대기를 즐긴다. 그런 행위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의 즐거움이었다. 지적으로 남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습득 능력은 천성을 공고히 하는데 쓰였다.


공소시효가 지났다. 나약함을 내 입으로 표명하기에는 증인이 인정받을만한 나약함을 잃었다. 내가 추구하는 정의는 내가 지향하지만 나의 삶을 정의롭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런 사태에 있어서는 궤를 같이 한다. 몽상가들이 망상만 하다 빠른 시일 내에 모조리 굶어 죽기를 바란다. 다시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나는 부품이지만 다른 부품을 부수고 싶은 열망이 강하다. 그냥 내가 속한 이곳이 새까만 잿더미로 바뀌었으면 한다.


싫은 생각은 형태가 변질되어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원산지를 알려주었다. 사용 도중 문제가 생긴 일이라 생산자를 탓하기엔 늦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려 25년이 흘렀다. 이렇다면 더 이상 그들과 1996년 이후의 기간 동안 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


대의를 위한 공감은 헤프게 내놓는 그들에게 내가 한 번만 들여다봐달라며 겨우 꿰매 내민 마음을 넝마와도 같이 여기고, 사소하게 취급한 후 그냥 기질과 성품의 합작품으로 호도할 뿐.


받아들인 지 오래다. 나는 남을 상처 주고 기만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그러한 자질을 만족시키며 그들을 추락시키는 방법을 강구하는 내가 사실은 너무 싫어서 죽고 싶어 진다. 제대로 된 글이 아닌 양가감정과 혐오로 점철된 글을 써재끼는 내가 한심스럽다.


글을 쓰면서 키보드와 팜레스트를 손톱으로 얼마나 긁어댔는지 모른다. 주체할 수 없는 짜증에 뒷목이 오싹한 상태가 지속됐다. 오늘 난 여러분에게 했던 괜찮아졌다는 말을 객관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 연기한 기만행위로 추락시켰다.


내 평안 어디서 찾을 수 있나? 무. 그것보다 더한 평안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믿음직하지 않은 것을 믿는 이들이 가증스럽고 증오스럽다. 그것이 나에게 삶을 선물해준 이들이라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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