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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Nov 26. 2021

꾹꾹 눌러 담아도 넘치는 어떤 날

2020년 5월 28일

작년 이맘때 집 앞에 만개한 장미를 손톱 달의 빛에 비추어보며 했던 생각들, 나에게 꽃은 항상 슬픔과 함께.


불행인지 다행인지, 글을 덜 쓰게 되었다. 물리적인 스케줄에 목이 멘다. 자아는 집에 못 들어간 지 오래되어 보이는데, 신발이 깨끗한 것을 보면 그만큼 많이 돌아다니지 않은 건가?


에너지 드링크를 자주 마시기 시작했다. 잠에 못 드는 밤의 따가운 눈초리를 그 탓으로라도 돌리고 싶다. 사실 커피 한 잔에는 즐겨 삼킨 무엇의 세 배나 되는 카페인이 들어있다. 괜히 알아버린 일. 내 핑계의 견고함이 남들의 일상 앞에서는 물러지는 듯하다. 그럼에도 눈이 침침해 전화기와 컴퓨터 디스플레이의 대비 설정을 높여야 했다.


'그게 이제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래. 이제,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이제의 이전, 나라는 범위의 축소가 일어나기 전이었다면 과연,

 

냉정 해지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무정하게 말하는 법을 연기하며 겨우겨우 주워 배우는 것도 한참이 걸렸던걸. 지향하는 냉정에도 못 미치는 나는 진짜 차가워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단어가 좋아서, 차가움과 고요함. 냉정. 사실 차가워진 마음인 줄로 헷갈려 뜻을 찾아봐야 했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죽음은 끝을 맞이한다. 죽음의 시작이 어디쯤이었는고 하니, 삶을 이어갈 의지가 거센 빗물의 급류를 만나 그 모습을 뿌리째로 드러냈을 때가 아니었나. 지키던 자리를 이탈했을 때. 소실은 시작되며 소유의 마침표를 찍는다.


위로와 공감을 해주지 못할 거면 침묵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나의 삶에 정말로 필요한 문장.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어려워하고, 설령 들어 이해하더라도 나는 마음을 다해 위로하거나 공감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진즉에 깨달았다.


유야무야 이유를 결착 지어본다. 그냥 이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자신의 그릇에 옮겨 담아 형태를 국한하는 것이 디폴트로 정해진 채로. 가끔 용기에 담겨 형태를 바꾼 상대가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만족을 표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조심할 부분들을 슬쩍 피해서 가는 능력이 늘었다.


언젠가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새벽은 길고 해는 짧다. 급급한 할 일들을 차근차근 천천히 즈려밟다보면 고운 가루까지는 아니지만 입김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입자로 변한다. 매일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바람을 불어 털어주면, 나의 할 일은 단지 그뿐.


단어와 표현을 다채롭게 쓰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생각도 발맞추어 팔레트도 늘렸다. 언제나 알맞은 마음은 없어 꼭 다수의 항목을 섞어 써야 한다. 직선을 팽팽하고 곧게 유지하는 것은 끝과 끝, 가장자리 끝에 찍힌 점. 그래도 선분 위의 점이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가랑비가 몰래 적시는 나의 옷자락의 얼룩이 짙어지는 것을 좌시한 나에게 주어진 책임은 피부에 찰싹 달라붙는 옷이 마르며 열을 앗아간 보답으로 내놓은 한기를 버티는 것. 젖은 의류는 생존을 위해 차라리 벗어두는 것이 낫다는 사실은 상식. 서둘러 벗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좋아하는 운동을 그만둔 지 4개월 남짓. 가늘어진 팔을 보며, 볼륨이 줄어든 상체를 보며. 더 이상 유연하게 움직이지 않는 오금을 보며 부메랑처럼 돌아온 물리적 나약함을 체감한다. 잃을 것이 두려워 가지지 않는 일이 완전히 어불성설은 아니구나.


속절없게 경건히 길어가는 머리카락 끝자락. 나머지는 단호한 변화를 꼴에 능청맞게 드러낸다. 받기 싫은 질문들, 알기 싫은 진실들. 억지로 빙빙 돌려 대답하는 나, 호기심에 죽은 고양이.


만족스럽지 못한 하루를 보낸 후에 집으로 돌아와 무엇을 해야 빠르게 불만족을 빠르게 해소하고 떨쳐버릴 수 있는지 배운 적이 없다.


효율 떨어지는 방법으로 소강을 이루고 나면 어김없이 어둠이 거둬진다. 무인도에서 오래 지내서 그런지 망치보다는 돌로 내려치는 게 내 손에 익었다. 어찌 됐던 그 껍질을 깨고 나면 깨뜨린 도구가 무엇인지는 기억에서 잊힌다. 내가, 깨다. 두 가지 사실만이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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