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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Dec 07. 2021

꼬막을 삶을 때는 한 방향으로만 저어주세요.

2020년 6월 17일

나의 글을 쓸 수 없다. 뇌가 고꾸라져서 바닥에 달라붙고, 머리가 유압프레스 밑에 눌려서 꼼짝도 못 하는 상태에 놓인 것만 같다. 차라리 완전히 눌려 박살나버리면 차라리 나을 테지만 움직이지 못하게 단단히 누르고만 있다.

사랑니를 빼 턱 주위가 퉁퉁 부었다. 입을 벌리는 것이 아픈 것도 아닌데 입을 여는 것이 망설여진다. 꿰맨 잇몸에 음식이 닿지 않게 신경 써야 하고 곤두선 입 속 때문에 입에 넣기 꺼려지는 맛있는 것들. 없어야 알지. 없어야.

즐겁지 않은 날이 오면. 즐거울 수 없는 날이 오면.

즐겁지 않은 날이 오면 이성이 시키지 않을 일들을 하려고 마음먹는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궂은날들에 어떤 신발을 신고 걷는지, 우산은 펴는지 그저 어깨가 젖는 것을 감내하고 묵묵히 걷는지 궁금했다. 남을 닮길 원하지 않았는데 남의 삶에서 지혜를 훔치고자 하는 내가 우스워 비웃음이 난다.

하루 종일 흙을 옷자락에 묻히고 석고가루를 뒤집어쓰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물을 맞고 있으면 보람보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잘 못하는 나의 모습이 한심스러워서. 남들에게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고 상패며 훈장을 자랑하지만 그건 잠시간의 완장일 뿐이었고 나의 팔과 가슴팍, 손아귀에 남은 것은 보람이 씻겨나간 앙상한 자괴 아닌가.

녹록지 않은 일상의 호흡. 미로를 지은 사람도 찾지 못하는 출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나약하게 구는 나의 문제라는 것은 공연한 사실인데 오늘마저 애써 부정해본다.

뭐든 해낼 수 없는 나에게 실망했다. 자기혐오라는 단어를 잊고 지낸 이유는 내 발목의 족쇄를 내려다보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인데 시간이 흐른 뒤에 시야를 떨구니 풀리기는커녕 많이도 달아놨다.

싫다. 싫다 정말 싫다. 무엇이 싫은지 생각하면 할수록 답을 얻지 못한다. 진통제를 사 왔다. 정신적으로도 진통제는 작용한다. 물리적인 부분을 담당하는데도 불구하고.

재능이 없다. 재주만 부릴 줄 아는 잔나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원숭이도 몇 만 년쯤 지나면 사람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백 년도 못 사는 먼지 아닌가.

누구처럼 펑펑 울고 잠시나마 자신을 잃고 나면 괜찮아질까 싶다가도 내가 그만큼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이번에 나를 놓으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떠날까 싶어서,

사랑스러움을 간직한 것만이 사랑받는다. 화가 날 정도로 정확한 이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부끄럽다. 이런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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