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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Dec 05. 2021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글.

2020년 6월 13일

과일이 먹고 싶어져서 새벽을 지새우고 해가 뜨자마자 냉장고에 있는 오렌지를 꺼내어 먹었다. 칼질할  팔이 아픈 이유는 어머니가 끊은  팔의 림프선 때문이 아니라  들지 않는  때문이라고 마트에서 강력하게 주장해서 샀던 독일제 쌍둥이 칼은 아주  들어서  때마다 기분이 좋다. 비록 사려고  이유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과적으론,

사실 오렌지는 철이 지났다. 봄 과일은 여름이 다가오는 이 시기에 맛이 없다.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매일 오렌지를 대여섯 개씩 먹던 이번 봄의 오렌지는 유독 더 맛있어서 나의 입맛을 돋웠으니까, 혹은 인공적인 기분을 먹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또 다른 나의 눈엔 자연에서 난 과실을 입에 처넣는 게 마음에 들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오렌지, 먹기 힘든 과일, 손이 끈적해지지 않고서는 깔끔하게 먹기 어려운 과일. 먹고 나면 꼭 과육의 섬유질이 이에 껴서 급식으로 나오는 날에는 곤란했던 과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둔지가 오래된 탓인지 껍질이 말라있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다. 그냥 나는 내 입 속에 자연의 것을 집어넣고 싶은 것뿐이니까. 나도 생기를 간직한 무언가 임을 일깨우는 행위의 일환으로. 오렌지를 반으로 자르고 그 반구가 되어 드러난 과육을 또 반으로 자르고 다시 반으로 자르면 오렌지는 8조각의 먹이로 바뀌게 된다.

정신없이 오렌지 세 개를 잘라 선 채로 그 자리에서 먹어치웠다. 먹었다기보다는 한 조각에 한 번씩 깨물어 본 후 버렸다. 스물네 번의 입술의 움직임이 있은 후 맛이 수분기 없던 껍질을 배신했음을 알았다. 오렌지는 달다.

귤 박스를 따뜻한 바닥에 놨다가 아래 깔린 귤이 모조리 상했던 기억이 난다. 문득 입가와 손끝이 따가웠다. 오렌지는 산성이니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입을 닦는데 따뜻한 귤 박스의 아래에 있던 귤의 냄새가 났다. 귤은 초록색으로 변하고 당분이 말라붙어 희게 변했었기에 그런 냄새가 날 법도 했지만 내가 먹은 오렌지는 살짝 마른 것 외에는 이상이 없었는걸,

오렌지의 심지는 껍질을 배신하지 않았다. 자신이 철 지난, 철 지나고 있는 과일이 된 것을 깨달은 오렌지의 꼭지와 이어진 심지는 그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과육은 영문도 모른 채 여전히 달다.

식욕이 없어 끼니를 숱하게 거르고 그에 따라서 기력이 쇠했던 시기에 봄의 오렌지는 고마운 과일이었다. 이틀에 한 번. 밖에 나가는 유일한 일이 오렌지를 사러가는 일이었을 만큼 좋아하게 됐다. 한 그물망에 8개의 오렌지. 만 원. 영원히 달콤한 봄의 오렌지. 흐르는 과즙이 대수랴. 끈적해질 손이 문제랴.

진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오렌지만큼 좋아한다고 말해야겠다. 눈치 있는 오렌지 꼭지와 심지처럼 영악하게. 시간이 지나 껍질이 바싹 말라가더라도 물정 모르고 한 없이 달기만 한 마음을 감추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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