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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Dec 11. 2021

개박살난 자존감

2020년 7월 7일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할 일이 쌓여 묵직해진 캘린더를 열었다. 새삼 벌써 올해의 절반이 지나있음을 알았다. 차라리 이런 삶이 낫다. 잘하는지 못하는지 스스로 평가할 겨를도 없는 압력을 받는 일상이.

단 한 번이라도 그 입에 닿고, 그 눈에 담고 나면 그 어떤 휘황찬란한 순간이 와도 채워지지 않는 거대하고 깊은 그릇이 되리.

높아진 눈은 어떠한 상황과 항목에서도 높이를 낮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안목이라고 부르는 단어는 그런 뜻일까. 높이 활공해도 녹지 않는 날개를 짓는 일.

여전히 당연히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던 것들에 대해, 사양하지 않고, 받아마지 않던 당시 나의 자격에 대하여 의심해본다. 그대가, 나에게, 왜. 직접 물어볼 자격은 잃었기에 잡동사니만 뒤진다.

진리의 오른편에 위치한 지혜는 정답은 없고 해답이 난립한 세상에 가장 쉬운 말들 사이에 풀이를 숨겨둔다. 먼지가 많으니 마스크를 쓰세요.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손을 자주 씻으세요.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지 마세요. 잘만 지키면 남에게도 나에게도 누가 되지 않는다. 턱을 들어 옥좌의 오른편을 보라.

알기 쉬운 풀이가 반영구적 안정을 가져다 주지만 내가 가용 가능한 중력 안에서는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 정신을 아득하게 한다. 그래서 그런가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귀요미라고 말하는 나사 빠진 농담이 어이없지만 재밌게 느껴진다.

'연결되어 있지만 맞닿아 있지는 않다.'

최근에 본 문장 중 가장 이 시대의 관념에 부합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지만 닿아있지 않다. 맞, 닿아 있는 상대도 적다. 그저 적정한 가까움이 닿음이라고 대충 결론짓고 이름 짓는 정도가 닿음의 정의로 통용되고 팔린다. 일방적인 닿음은 나에게만 염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닿음이라는 것을 기피하면서도 열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닿지는 않았어도 서로가 소유한 연결고리로 엮어두어 너무 멀리 가지만 않게 해 두면 대강 유지되던 끊김을 전제한 연결들.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사람들은 대부분 일부를 걸어둔 상태였는지도. 우리 사이의 관계적 모체는 누구였을까. 관계성의 탯줄은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자신을 전해주고 있었나?


연결고리는 너무도 쉽게 절단되어 널브러졌다. 너희가 가진 도구의 이례적이고 경이적인 무력이 단단히 결착되어 잡아두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연결을 끊어낸 것인지, 아니면 기대 이하로 관계의 고리는 조잡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 본인을 의심했다.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과의 사랑은 언제나 서늘한 날카로움의 칼 위를 걷게 하고, 브레이크 없는 슈퍼카의 운전자로서 오르게 했다. 우리는 아주 깊게 페달을 밟았다. 엑셀 하나만 있는 운전석 아래의 공간이 휑했지만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결착을 이루고 나면 하지의 치명적인 부상도 제동 하지 못하는 높은 속도에 의한 충격도 내 탓으로 돌아온다.

책임의 중함과 내가 받을 결과의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하길 즐겼다. 나의 삶의 시간에 비해서는 긴 시간에 걸쳐서. 어리석어 배움이 없는 건지 아직도 어떤 마음은 칼 위에, 운전대 위에 있다. 발을 잘라내고 손을 부러뜨려도 마음이 영영 바뀌지 않을까 염려한다.

연결도 닿음도 눈에  띄지 않고,  넓고 깊은 그릇을 바다라고 부를  있을 날에야 무의식적인 확장 행위가 그만두어지지 않을까. 너희들이 모두 정수리를 보이게 되는 그날에 말이다.

휴대폰 액정이 깨진 줄로 알았는데 붙여놓은 두꺼운 보호필름에 금이  모양이다. 본질은 망가뜨리지 않으면 했던 바람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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