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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Dec 10. 2021

불면을 겪던 어느 날에

2020년 7월 1일

헷갈리는 일이 생기면 높은 곳에 올라간 이들을 바라보자고 생각했다. 내가 선 자리의 공허를 절절히 느낀 후에 내가 선택하였던 방법은 주저앉아 우는 것이 아닌 절벽에 매달리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


무참히 졸리고도 피곤해졌으면 좋겠다. 눈꺼풀이 무거워 견딜 수 없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그런 졸음이 찾아오길. 기억이 너무 오래되었다. 항상 잠의 첫머리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몸과 정신을 한계로 밀어 벽에 바싹 붙인 후에야 잠들 수 있다. 마음 놓고 머리를 누인 적이 없어 이부자리로 향하는 움직임이 더디다. 잠을 잘 잘 수 없게 된 후로는 스트레스가 잘 해소되지 않기에 푸석하고 건조하다.


챙기고 싶은 내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애석하게도 양손에 쥔 것을 놓고 그들의 손을 잡을 여유가 없다. 어둠 속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항상 내 옷자락을 잡아끌어 신경을 곤두세우는 손가락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와 나의 피부에 닿아있는 이야기가 너무 달라서 마음을 죈다. 괴리는 나를 설명하는 또 다른 단어로 비집고 들어왔다.


MBTI를 잘 믿는 사람들.


사람은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타인에 의해 해설받으며, 타자화한 이야기를 재료 삼아서 직접 만든 단어의 틀에 눌러 담아 모양을 낸다. 삶의 가랑비를 어찌 피하리, 나 또한 주위의 맹신에 의해서 유형별 성격이 머릿속에서 고착화되어갔다. 남에게 관심을 꺼도 매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당연히 나의 ENTP.


공감하지 못한다, 감정이입이 안된다. 따위의 내 성향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제 역할을 못하는 기분의 상황을 가져온다.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물을 담지 못하는 컵, 자르지 못하는 가위가 된 기분으로 해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허공에 흩어지는 눈짓과 반응을 보이면 그런 대화는 으레 맥없이 끝난다.


인간은 관계성을 갈망한다. 동일성이나 규칙성을 찾는다. B형은 이래, 이런 입술 모양은 저래. 그렇게 마음속에서 상대에 대한 규격화를 완료하고 나면 파악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또 관계를 나눈다. 한번 틀에 박아 굳혀진 관념은 터무니없는 규격의 온도가 갑작스레 난입하지 않는 이상 잘 바뀌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지속 가능한.'이라 이름 붙이려고 안달이 난 것인지 궁금했다. n 년? 그쯤이면 그 행위나 관계는 지속 가능하다고 판단되어 관심을 꺼둘 수 있는 일이 되는 것일까. 영원한 불꽃, 마음속 욕심뿐이리라.


풀썩,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쓰러져 누워있으면 갖가지 스트레스가 떠오른다. 허접한  , 모방뿐인 작업, 과하다 싶은 과제, 발전하지 않는 그림. 볼품 없어진 , 퀭한 볼과 . 소홀하게 되어 미안한 가족, 사랑을 주는 이들에게 미안해 추한 모습을 애써 덕지덕지 감춘 채 사랑을 받는 나의 모습.


볕을 쬐고 있으면 살가죽 밑의 무언가가 피부를 넘어 말을 건다. 왜 자주 바깥에 나오지 않는지 물어보면 대답은 같다. 내키지 않는 일이 많아서. 해를 가릴 정도의 염려가 삶을 덮을까 하여.


깎아지른듯한 절벽의 고상함을 손가락 마디마디에 새길 때 잠깐 높고 높이 빛나는 이들에 대한 시선을 거두어 떨구었다. 아, 제가 얼마나 초라해 보이실까요. 이 비참함이 당신들에게 보일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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