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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Dec 12. 2021

호기심은 즐거운 감정

2020년 7월 12일


보테가를 든 너의 마음은 그 클러치의 가치에 못 미쳤듯이. 생로랑이 얹어진 너의 입술이 아름다움만을 말하지 않았듯이.

시간 앞에 모두 무력하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에서 예전의 사랑을 찾을 수 없는 것도, 당시 어린 나를 오래 앓게 했던 너의 성품도 이제는 같잖은 심술일뿐으로 보였다. 8년이란 그런 것이다. 애끓던 사랑도 어렴풋.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매일 들여다봐도 끝이 없을 것 같던 깊이의 두 눈은 이제는 탁한 20대 소녀의 눈동자 속의 얕음만.

사랑도 삶도 치열하게 견뎌내다 보면 다다르는 어떠한 기점에 족적을 남길 수 있다. 그것은 의지의 차이였다. 누구나 견딜 수 있고 도달할 수 있었지만 버티는 것을 포기한 자들이 숱했다. 책임 잃은 갑작스런 포기에 나에겐 상흔이 더러 생겼다.

겉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는 정신은 전이가 쉬웠다. 갖은 고초를 겪지 않아도 쉽게 행동 전반의 통제권을 쥐었다. 발걸음과 지친 시선이 닿는 곳곳마다 그 절대적 전이의 불특정성은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나비효과라는 말 속의 나비, 그리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인 인과. 너희는 그 관계성을 너무나도 간과하는 것 같아. 나비의 날갯짓과 토네이도가 가진 연관성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 명확한 그 상호작용을 부정하려들다니. 염치도 없다.

탓. 탓, 탓이라는 말은 웃기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 혹은 전가하려는 사람이 처음 썼을 것만 같은 말. 책임을 져야지. 그러지 못한다면 그런 생각이라도 가져야지. 수직적 감정구조는 나를 지치게한다. 연어는 강물을 거스르지만 인간은 거스르는 것을 본성에 내재해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극복하려하는 자는 쭉 고통받는다.

몇 년 되지도 않는 정신적 확립을 거친 시간동안 빈번한 고통을 어찌 견뎠는가. 매번 아픔에 신음하며 열망을 감추고 원망을, 책임을 떠넘긴 세대가 죄책감을 통감하고 그 뚫린 입을 닥치길 빌며 지내지 않았던가. 저항해야하는 이 삶. 무언가를 항상 깨뜨리고 부숴 버려야만 다음 여정을 시작 할 수 있는 적대적 태도의 삶.


부푼 기대는 필히 금새 터지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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