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7일
드문드문 적어두었던 파편을 하나로 합친 뒤, 연거푸 퇴고를 지독하게 겪는다. 쓸데없는 표현들을 잘라내고, 나의 호흡에 맞게 글을 분리해 떼어내고. 마지막으로 그 기분에 알맞은 사진을 찾아 곁들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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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찾아오기 전에 급하게 끄적인 문장들이 모여 별개의 하루를 만들어냈다. 매 순간 쉼 없이 파도가 밀려오는데 어찌 모래 위 글씨가 건재할 것인가. 옮겨 담아 두는 것이 현명하며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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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했다면 그 결과의 책임을 미래에게 이양해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감정을 무자비하게 쏟아내어 놔도 다시 쓸고 닦아내는 것에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었다. 오히려 커버린 나에겐 그 열린 문으로 내보낸 몸의 일부 때문에 축났을 네 신변 걱정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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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거꾸로 뒤집혀도 너희는 이해하지 못할 것들. 불을 꺼뜨렸던 제련소가 다시 문을 열었다. 평생 돌로 깎은 석기를 들고 설치길 빌어. 거푸집에서 날붙이를 꺼내는 날이 오면. 네 것이 얼마나 구린지 알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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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망각. 기억력이 좋아 영리한 사람들. 즐거움도 포기하고 곱씹기를 여러 번, 무대 위에 올라선 그들은 정말 영리하게 보인다. 잘한다는 건 멋진 거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나쁘고 악한 것도 능숙하게 되면 멋지다. 어설프게 착한 것보다 백 배 천 배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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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인생에 족적을 두지 않고 책임행동을 회피하면 한결 수월해지는 삶. 인간의 몸에서 직선인 곳은 없지만 훈련을 통해서, 도구를 통해서 곧은 직선을 그려내고 만들 수 있다. 학습은 스스로의 입이 가르친 대로. 여전히 비 상식은 나를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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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행복과 확실한 불행. 균형이 무너진 선택지를 받아 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스럽고, 내가 가장 경계하던 그 선을 묵인해버렸던 어제. 왜 배운 대로 하지 않았나, 하면 의외로 진즉에 비 상식의 말도 안 되는 합리를 인정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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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자리에서 개인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하나 언제나. 짜증스럽고 가증스럽게도 언제나. 누군가는 과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잔업은 다음 사람에게로 전가된다. 비효율적이고 무심한 시스템의 흐름은 내 마음속 커다란 혐오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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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쭉 아기로 살았으면서 어른 흉내를 낼까. 그런 합당하지 못한 이들에게마저 누가 생식의 축복을 주었을까. 규범과 관념에 사로잡힌 내가 원초적 체계의 완전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베일 덮인 눈으로 해석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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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책임. 책임! 어떠한 것이 당신의 본분이고 책무인지. 배워도 알 수 없고 알려주어도 들을 수 없다. 체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리어 초연해졌다. 기대감이 사라졌기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에 조차도 은근히 스미고 서린 기대가 일말의 무엇도 없는 텅 빈 채로 말살되었다. 본래 아기는 기저귀를 차고 누워 무능력한 상태로 놓여있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잠재력을 가진 무용일지라도 현재의 무용함은 무용함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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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만 주지 않아도. 손해를 입히지만 않아도 본전인 일들. 용납되지 않는 존재의 가벼움. 귀책은 너, 그리고 너. 절대 너. 불꽃을 내지 못하는 부싯돌 같으니라고. 의미 없는 돌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