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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Dec 23. 2021

응애 하고 운 것도 아주 오래전

2020년 8월 17일

드문드문 적어두었던 파편을 하나로 합친 뒤, 연거푸 퇴고를 지독하게 겪는다. 쓸데없는 표현들을 잘라내고, 나의 호흡에 맞게 글을 분리해 떼어내고. 마지막으로 그 기분에 알맞은 사진을 찾아 곁들이면,

잠이 찾아오기 전에 급하게 끄적인 문장들이 모여 별개의 하루를 만들어냈다. 매 순간 쉼 없이 파도가 밀려오는데 어찌 모래 위 글씨가 건재할 것인가. 옮겨 담아 두는 것이 현명하며 바람직하다.

충실했다면 그 결과의 책임을 미래에게 이양해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감정을 무자비하게 쏟아내어 놔도 다시 쓸고 닦아내는 것에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었다. 오히려 커버린 나에겐 그 열린 문으로 내보낸 몸의 일부 때문에 축났을 네 신변 걱정이 앞섰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도 너희는 이해하지 못할 것들. 불을 꺼뜨렸던 제련소 다시 문을 열었다. 평생 돌로 깎은 석기를 들고 설치길 빌어. 거푸집에서 날붙이를 꺼내는 날이 오면.  것이 얼마나 구린지  텐데.

즐거운 망각. 기억력이 좋아 영리한 사람들. 즐거움도 포기하고 곱씹기를 여러 번, 무대 위에 올라선 그들은 정말 영리하게 보인다. 잘한다는 건 멋진 거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나쁘고 악한 것도 능숙하게 되면 멋지다. 어설프게 착한 것보다 백 배 천 배 더.

남의 인생에 족적을 두지 않고 책임행동을 회피하면 한결 수월해지는 삶. 인간의 몸에서 직선인 곳은 없지만 훈련을 통해서, 도구를 통해서 곧은 직선을 그려내고 만들 수 있다. 학습은 스스로의 입이 가르친 대로. 여전히 비 상식은 나를 힘들게 한다.

애매한 행복과 확실한 불행. 균형이 무너진 선택지를 받아 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스럽고, 내가 가장 경계하던 그 선을 묵인해버렸던 어제. 왜 배운 대로 하지 않았나, 하면 의외로 진즉에 비 상식의 말도 안 되는 합리를 인정했나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개인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하나 언제나. 짜증스럽고 가증스럽게도 언제나. 누군가는 과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잔업은 다음 사람에게로 전가된다. 비효율적이고 무심한 시스템의 흐름은 내 마음속 커다란 혐오의 원천.

왜 쭉 아기로 살았으면서 어른 흉내를 낼까. 그런 합당하지 못한 이들에게마저 누가 생식의 축복을 주었을까. 규범과 관념에 사로잡힌 내가 원초적 체계의 완전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베일 덮인 눈으로 해석하는 것일까.

책임, 책임. 책임! 어떠한 것이 당신의 본분이고 책무인지. 배워도 알 수 없고 알려주어도 들을 수 없다. 체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리어 초연해졌다. 기대감이 사라졌기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에 조차도 은근히 스미고 서린 기대가 일말의 무엇도 없는 텅 빈 채로 말살되었다. 본래 아기는 기저귀를 차고 누워 무능력한 상태로 놓여있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잠재력을 가진 무용일지라도 현재의 무용함은 무용함일 뿐.

피해만 주지 않아도. 손해를 입히지만 않아도 본전인 일들. 용납되지 않는 존재의 가벼움. 귀책은 너, 그리고 너. 절대 너. 불꽃을 내지 못하는 부싯돌 같으니라고. 의미 없는 돌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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