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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Dec 24. 2021

울 수 있으면 많이 울어두자. 슬픈 일이 많을 때.

2020년 08월 31일


8월의 말일, 여름의 끝자락.


얼마나 더 상고하고 격통의 몸부림을 겪은 후에야 순풍이 부는 바다를 마주할 수 있을까. 파도와 같다. 아주 높은, 정말 거대한 파도와 같다.

넘기지 못하면 내가 타 있는 배와 안에 속한 모두 산산이 부서져 가라앉겠지만 잘 넘긴다면 모른 채 할 수 없던 그 크기가 흔적도 없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힌다.

태동이 느껴지려 할 때. 알아채고 조치를 취해 놓는 것. 문제가 있었다고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울 때가 오면 처음부터 완전한 것보다 교정능력의 유무가 실력의 척도니까.

울적한 생각을 하면 눈이 화끈거려요. 눈물은 나지 않는데 그냥 떠오르기만 해도 울컥하는 이야기들 있잖아요.

생일선물을 뭘 할까 생각을 하다가 문득 좋아할 그대 모습에. 아파서 놓아야 했고 잃은 것들에 또.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분해서. 내가 아직도 살아서 길을 걷는다는 게 아이러니해서. 나를 걱정해주는 이들에게 너무 고마워서. 그러나 큰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는 나의 성품이 같잖아서. 떠올린 성취의 이미지 속 주인공의 가리어진 얼굴이 내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그간 소중한 것이라 여기던 것들을 쉽사리도 버린 나의 간악함에.

나의 자존감은 다 거짓말이다. 아주 새빨갛다.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렸는데도 불구하고 그 분칠을 벗긴 얼굴을 나라고 생각 안 한다. 열정과 흘린 피의 붉음이 아니라 부끄러움에 붉어진 얼굴이 있을 테니까. 언제까지 유지될까. 창피하다. 모른 척 못한다.

조바심을 내는 사람은, 초조함이 드러나는 사람은 주위의 공기마저 떨리게 하는가. 그 흔들리는 영역은 접근이 꺼려지는 불 안 속. 나의 흔들림이 삶의 근간을 흔든다.

할 수 있어. 그런 무책임한 말은 하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없다. 결코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마음 편하다. 믿음은 결과 위 사후 편향이라는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조미료에 불과하다. 굳건히 믿음을 지킨 사람의 신실함은 보기 좋다. 자고 일어난 모습이.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의 운동 후의 얼굴이 보기 좋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지금 타고 가는 버스가 차라리 뒤집혔으면. 하고 생각하는 일을 매일 한다. 이제는 오히려 내가 탑승한 버스가 뒤집히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좋게 보고 실망한 사람들. 나쁘게 혹은 부정적 백지로 본 후 그 음극이 0으로, 양극으로 이동한 사람들.

전부 버리는 게 옳다. 여태껏 무언가를 이루고자 했을 때 했던 방식 그대로. 어떻게 그 순간이 오는 것을 눈치챘는가. 바로 그들이 나에게 하나도 아깝지 않은 존재가 됐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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