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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Dec 27. 2021

달려볼까 싶으면 발목 잡는 코로나

2020년 9월 4일

혼자.


일어나면 어제 사둔 먹을거리를 찾는다. 아침이 아닌 오후라도 내가 일어난  시간이 나에게는 기상  햇살을 처음 접한 시간이니 아침이라고 생각해. 나는 아무래도 유제품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비요뜨나, 드링킹 요구르트나. 그런 것들을 먹는다.

할 일을 훑는다. 나는 불안하다. 할 일을 써 놓지 않으면 불안하다. 친구가 강박적으로 할 일을 전화기, 포스트잇. 심지어는 손에까지 적어둬도 까먹는 본인이 싫다며 자조적으로 쓴 글이 생각이 난다. 읽기 좋은 글이었다. 아주 예리하고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칼날을 크게 확대해 선으로, 면으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나도 할 일을 중요도 순으로 메모장에 써둔다. 캘린더나 계획표 어플은 언제나 손에 잘 익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알림장을 쓰듯이 1. 2. 하며 번호를 매겨할 일을 적은 후에 처리한 일들에는 취소선을 긋는다. 항목에 모두 취소선이 그어지게 되면 그 메모는 최근 삭제된 항목으로 가 할 일을 마친다.

피부약을 먹고 소금으로 식염수를 타서 코 청소를 한다. 전에는 체질이라는 것이 짜증 난다고 느꼈다. 피부, 막힌 코와 기관지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이 거추장스러웠다. 운명이라 불리면 받아들임을 강제하는 어감이 있다. 체질도 그렇다. 극복이라는 말보다 완화, 개선 등의 말이 개개인의 특징에는 쓰인다. 그냥 강한 성분의 약을 먹고 아침저녁으로 콧 속을 신경을 쓰는 일 정도로 삶의 루틴으로 구겨 넣어두었고 다행히 일체화가 이루어졌다.

대충 물을 끼얹어 샤워를 한다. 좋아하는 만화에서 목욕은 영혼도 함께 씻는 일이라고 했다. 중2병스러운 이 말이 민망해도 더운물을 맞고 있노라면 누구나 금방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9월. 여름이 지났으나 계절은 여전히 등줄기에 땀을 흐르게 한다. 하루에 많으면 세 번이나 샤워를 해야 한다.

작업을 하러 가기도 하고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한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작업은 내키지가 않는다. 졸업작품이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그 물이 새는 구멍을 겨우 틀어막았고 과정 속에서 학교의 시스템은 나를 닳고 닳게 해 오만정을 다 떼어놓았다. 원래 4학년들은 다 이런 느낌을 겪는 건가? 매일이 난생처음 겪는 날이니까 의문스러운 일뿐이다. 전부 그냥 전에 비슷한 일들로 인해 경험으로 틀어막은 또 다른 균열들이다.

기대가 많았다. 여전히 아직 그 잔이 비었다고 할 수는 없다. 기대를 가지고 목적 있는 창의성을 아주 오랜 시간만에 꺼내어 만들었다. 그저 꽉 쥐었다. 바이러스 때문에 인간의 모든 활동이 위축되고 그에 따른 부가적 가치, 기회도 달아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많지만 나는 놓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꾹 참았다.

운동을 하러 가서는 실망했지만 내 손은 두 개이니까 힘이 부치더라도 하나 더 잡을 수 있다. 처음 상처를 발견했던 때로부터 6개월. 반년이 흘렀다. 전역 후에 들었던 바벨의 무게들도 그 자리를 얼마간은 지켰다. 밀고 당기고 들어 올리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사실은 보람이나 개인적인 성취와 같은 감정보다는 멋진 이. 언제나 글 속에 등장하는, 찬란하게 빛나는 후광을 뒤로하고 그 얼굴은 보여주지 않은 채로 고고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 그도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해 해 보는 모방 중의 하나.

운동이나 작업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 시간을 녹이고, 활활 태우고 집에 돌아와 씻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좋아하는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추천이 많아 보게 된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포장해오거나 사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대충 하루에 세 차례의 음식을 입에 집어넣고 샤워를 하고 청소하고 나의 삶을 견인해줄 만한 일을 하나쯤 하면 하루가 끝난다.

별일 없어 보이는 일상인데도 불안감은 뇌를 꺼내지 않는 이상 존재할 것이다. 아침에 먹은 유제품의 유통기한. 할 일이 누락되지는 않았을까. 여름이라서 쉽게 습한 화장실의 청결. 작업물의 완성도. 웨이트에서 오는 피로도. 심지어 이제는 독립을 위시한 무자비한 경제적 부담감까지.

마음이 정리가 안되어서 써본 하루 일과. 뭐 하나 곱게 되는 것이 없다. 생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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