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0일
화에 대해서 줄곧 생각하고 그런 상태로 있는 것이 익숙하다. 길들일 수 없지만 다룰 수 있다. 기쁘게도. 정말 기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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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깨지는 것은 보기가 좋다. 내 쪽의 믿음, 네 쪽의 믿음. 어느 쪽이 됐던 상관없다. 부서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내 눈을 깜빡이게 하는 빛.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구도자들의 얼굴에도 파편에 반사된 빛이 비쳐 알록달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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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을 연료로 삼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참 신기해. 그들은 연비가 좋다. 내가 나의 마음속 뜨거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어 넣었던 것들이 무색하다. 비록 그 긍정의 덮개 안에 비관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감싸고 있는 것은 보기에 썩 나쁘지 않다. 부르짖던 것이 아닌가. 번지르르한 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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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몰아세운 후에는 불쑥불쑥 떠오르는 격앙된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눈물이 비집고 나오려는 눈꺼풀과 미간을 강하게 찌푸려보기도 하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콧잔등을 찡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유감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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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항하고자 하는 것들은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나에게 뻗치는 손아귀와 같은 교정의 마음이었다. 나는 내 생각을 고고히 관철할 의무가 있었고 의무는 튼튼한 갑옷이 되어 나를 지켜주는 유일한 보루였다. 안전하다고 느낄 때 오금이나 관절 등의 빈 약점을 통해 입은 상처들은 정말 치명적이고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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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취하기 좋아하는 바싹 낮춘 저자세가 하나 둘 주워 먹은 나이의 영향인지, 시대정신과 필요 이상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처세인지 정확히 볼 수 있었다면 좋겠다. 부디 관용을 배운 것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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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외의 사람들을 병신 취급하는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는 지인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면 죽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삶의 가치를 다른 곳으로 옮겨보려 시도하는 누군가들.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와 평범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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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나누면 배가 되는 사람. 기쁨을 나누면 절반이 되는 사람. 나에게 위로받지 않으면 된다. 축하를 바라지 않고 기쁜 일에 대한 사실만 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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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빨래를 해야 하는 민감한 옷감의 의복. 정하면 된다. 입기 원하는 것이 그저 집에서 편히 입을 옷인지 아니면 날개가 될 유려한 예복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