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가둘 수 없는 감각, 취향이라는 교집합

by 이보미

브랜드를 시작하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있다.


때로는 조언이라기보다

강요처럼 느껴졌던 질문.


"타겟 연령대가 어떻게 되나요?"

"여성용인가요, 남성용인가요?"


그 질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우물쭈물 했다.


속마음은 이랬다.

그저 내가 들고 싶은 가방을 만들 뿐인데.

가죽을 좋아하지 않는 내 마음에 꼭 드는 가방을

찾기 어려웠을 뿐인데.


내 취향이 조금 중성적이고 큰 가방을 좋아하니

성별에 관계없이 들 수 있지 않을까.


굳이 경계를 나누어야 하는 이유를 몰라

답답한 변명만 늘어놓곤 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나이를 정하고,

성별로 선을 그어야 할까.


여성적인 남성도 있고

남성적인 여성도 존재한다.


고전적인 취향을 지닌 청년도 있고

누구보다 감각이 젊은 노년도 있다.


자라(ZARA) 매장에서

3대가 나란히 옷을 고르는 시대에,

타겟을 숫자로 한정하는 건

너무 고루한 발상이 아닐까.


최근 광고 데이터를 확인하며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제 더 이상

특정 연령대를 정의할 필요가 없음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운영의 문제와는 다르다.

광고에서는 효율을 위해 여전히 타겟을 나눈다.

다만 그 숫자가 브랜드의 얼굴이 되지는 않는다.


이 가방을 선택하는 이들에게는

숫자 대신 '공통된 속도'가 흐른다.


나이로는 재단할 수 없지만

서로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유대감 같은 감각.


숫자는 편의적인 구분일 뿐,

감각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


내 가방의 정체성은,

굳이 말하자면

Genderless, 그리고 Ageless에 가깝다.


특정한 '누구'를 위한 가방이 아니라

왠지 모르게 '나'와 결이 맞는 가방.


젊어 보이려 애쓰지 않고

나이를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의 나와 함께

같은 속도로 나이 들어가는 물건이다.


어느 생의 지점에 있든

각자의 속도 그대로 들어도

어색함이 없다.


경제력 또한 기준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가방을

소중하게 여길 수도 있고,

누군가는 에코백처럼 가볍게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이 가방이 들린 이유는 같다.


'자신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과시도, 자격 증명도 아닌

내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물건.


사람들은 여전히 말한다.

타겟을 더 명확히 하라고.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는 타겟을 정하지 않은 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타겟을

처음부터 설정했다는 것을.


나와 같은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성멸, 나이, 소득이라는 지표 너머에서

'취향'으로 연결되는 사람들.

그들과의 공감을 위해

이 브랜드는 시작되었다.


그것이

내가 이 브랜드를 시작한

진짜 이유일지도...


숫자로 나누지 않아도

취향은 스스로 모인다.


다행스럽게도:)

그 고요하고도 분명한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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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리스

#에이지리스

#브랜드에세이

#선택의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