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위에서 일한다는 것

by 이보미

몸과 정신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의 흐름 안에서

같이 흔들리고,

같이 단단해지고,

같이 무너진다.


예전에는

마음만 단단하면

몸은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조금 무리해도,

조금 더 애써도

결과만 있으면 괜찮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방식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조용히 알게 되었다.


억지로 하는 일 위에서는

감각이 금방 닳는다.

디자인은 흐릿해지고,

생각은 둔해지고,

내가 원래 만들고 싶었던 결도

조금씩 사라진다.


그래서 이제는

기분 좋게,

적당히,

내 몸이 움직이고 싶은 만큼만 일한다.

그럴 때 결과물도 오래가고,

나 역시 오래 간다.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면

자꾸 조급해진다.

더 해야 할 것 같고,

쉬면 뒤처질 것 같고,

붙잡고 밀어야만

흐름이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감각을 느낀다.


집착하지 않을수록

일은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애써 끌어올리지 않아도

흐름은

자기 속도로 이어진다.


해야 한다는 압박보다

지금의 리듬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을 뿐인데

결과는

이상하리만큼 흔들리지 않는다.


운동도 비슷하다.

억지로 끌려가듯 하는 게 아니라

몸이 정말 움직이고 싶을 때

근력운동을 하고,

걷고 싶을 때

산책을 나간다.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마음은 금방 살아난다.

몸을 돌보는 일이

곧 정신을 돌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디자인도,

브랜드도

같은 방식이다.


감각이 열리는 순간은 따로 있다.

억지로 짜내면

모양은 나와도

기운이 없다.


그래서 나는

주문을 받지 않는다.

해야만 하는 순간에

억지로 만들어야 하는 구조는

내 방식과 맞지 않다.


미리 움직이고,

흐름이 올 때 작업하고,

기분이 투명할 때 만든다.

그 편이

결과도 덜 흔들리고

나도 덜 닳는다.


평생 가져가고 싶은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조급함은

속도를 내는 것 같지만

결국 방향을 흐린다.


삶도 비슷하다.

하고 싶을 때 하고,

해야 할 약속이 있으면

먼저 마음을 그쪽으로 돌린다.

그러면 어느 순간

정말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의지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행동을 만든다.


몸과 정신이 하나라는 걸 알고 나서

나는 일을 훨씬 부드럽게 대하게 되었다.

억지로 하지 않고,

흐름을 놓치지 않고,

내 안의 리듬을 지켜며 일한다.


그리고 요즘은

이 방식이야말로

가장 오래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조용히 확신하게 된다.


오늘도 내 몸에 먼저 묻는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


성과를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리듬을 잃지 않는 일.

그게 결국

내가 선택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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