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는 보리를 처음 만난 그날을 잊지 못해.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다 이곳에 와서 온 가족의 사랑을 받고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지만 나 혼자 뭔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거든.
보리를 처음 보고 나와 다른 생김새에 놀란 것은 사실이지만 나와 같은 존재가 우리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에 반가움이 더 컸지. 생김새의 차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밤톨만큼 작은 녀석을 보며 형으로서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집에서 내가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도와줬지. 비록 5개월 형이라 해도 고양이의 한 달은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되게 긴 시간이거든? 정말이지 형 노릇을 톡톡히 하면서 보리를 돌봐 줬다니까!
종일 보리와 붙어 다니며 먹고, 자고, 노는 모든 일을 함께 했지. 밤마다 온 식구들이 잠들 때를 기다려 조용한 어둠 속에서 함께 우다다 놀이를 하며 온 집안을 뛰어다녔어. 정말 행복했었지.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어.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화양연화였다고~!!
가족들은 내가 변했다고 생각했지. 예전처럼 엄마 집사나 누나와 놀던 시간도 줄었고 더 이상 밤에 함께 자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내게는 보리가 있었으니까! 녀석을 쫓아다니며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도 즐거웠으니까.
그러나 그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어.
아마 보리의 키가 나와 비슷해질 무렵이었을 거야.
보리 녀석은 더 이상 나의 도움받기를 원하지 않았고 점차 자기만의 벽을 쌓아 가는 듯 보였어. 자꾸 혼자 있으려 했고 내가 가까이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것처럼 행동했지.
내가 다가가려 하면 혼자 휙 하니 형의 운동기구 꼭대기로 올라가 빤히 나를 내려다보았지. 심지어는 우리 집에서 가장 높은 안방 옷 장 꼭대기까지 점령하며 마치 보란 듯 무표정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았다니까!
그런 모습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정말 얄미웠어. 기회를 엿보다 마구 달려가 덮치면 녀석은 반항을 하며 나를 밀쳐냈어.
“내가 형이란 말이야! 건방진 녀석아, 내가 가만 두지 않겠어!”
그렇게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나의 형이라는 말이 점점 공허하게 들리기 시작했어. 온 힘을 다 해 녀석을 제압하려 했지만 언제부터 인지 싸움이 끝나고 나면 바닥에 흩어진 것은 대부분 검은 회색, 나의 털 뿐이었거든.
그렇게 나에게 있어 보리는 어느 사이 애증의 대상이 되어버린 거야. 그렇게 미운 녀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보리의 곁을 떠날 수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