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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미 Sep 05. 2022

좌충우돌 여성 트리오『F3』를 소개합니다 (2)


『F3』는 월 1회 미사랑에서 만나 우리 마음 가는 대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통기타 노래 모음집을 놓고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특별히 지도해 주는 사람도 없고 리더도 없다. 그저 우리 방식대로 노래한다. 나는 노래마다 화음을 넣으며 즐거움을 더 한다. 우리에게 있어 노래 실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공간이 있고, 기타 반주가 있으니 좋은 것이다. 또한 중간중간 화음이 어우러지니 더욱 흥에 겨운 것이다. 


코로나19도 우리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마스크를 쓴 채, 6평밖에 안 되는 미사랑에서 정부의 거리두기 시책을 준수하기 위해 최대한 멀리 떨어져 방 한 구석에 한 명씩 틀어 박혀 노래를 불렀다. 그런 세월이 어느덧 3-4년.


작년 초 즈음 우리가 이렇게 노래 부른 지 오래되었는데 기념 공연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누가 알아주지는 않지만 팬데믹 상황이 끝나는 시기에 공연을 계획하고 우리만의 레퍼토리를 만들기 위해 노래를 선곡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막연한 목표를 세워 놓으니 쉽게 노래 선곡이 되지 않았고 지지부진 시간만 흘러갔다. 


어느 날 나에게 문자 메시지 한 통이 떴다. 모 공단에서 퇴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마음 연주대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목표를 정하고 노래를 부른다면 조금은 달라질 것 같았다.


바로 N선배에게 연락했다. 선배는 웬만해서 No를 안 한다. 나의 무모한 제의에 항상 흔쾌히 응해주는 선배가 그래서 좋고, 내가 항상 감사해하는 이유이다. 그럼 W는 어떠한지? W 역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실력에…”라고 반신반의하는 반응이었다. 물론 우리 실력에 수상 가능성은 거의 제로일 것이다. 그저 예선만 통과해서 본선 무대에 오르는 것이 목표였고 과정을 즐기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공식 연주대회 첫 출전이다 보니 우리는 우왕좌왕하며 서로 간에 좌충우돌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곡 선정부터 매 순간마다 의견 일치가 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서로의 의견이 갈라졌고 특히 반주를 녹음하는 문제에 이견이 많았다. 나는 우리의 정체성은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것임을 주장했지만 타인에게 피아노 반주를 요청해서 노래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거기서 가장 큰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그것만큼은 한치의 양보가 없었기에 목소리가 커졌고 더욱 갈등이 증폭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것을 즐긴다. 어차피 가수처럼 빼어난 노래실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내가 치는 기타 반주에 맞추어 감성으로 노래하는 것.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감미로운 가사에 젖어… 그것이 내가 노래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 반주를 해주고 내가 꾀꼬리가 되어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결국 나의 의견으로 갈등이 봉합되어 N선배의 멜로디언과 나의 기타 반주로 MR (반주 녹음)을 만들기는 했으나 그 과정을 거치며 나는 몹시 떨떠름한 상태가 되어 괜히 무모한 짓을 시작한 것 같은 기분에 의욕이 반감되어 버렸다.  특히 매사 똑 부러진 성격의 후배 W에게 “그래도 내가 선배인데….”라는 섭섭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이미 나의 뜻대로 의견이 모아 졌음에도 나의 옹졸한 뒤끝이 계속 작렬했던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연습을 계속해야 하나?” 내 마음속에서 갈등이 요동쳤다.


그러나 어차피 쏟아진 물. (우리 수준에) 거금 들여 반주 녹음까지 했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접고 노래 연습에 돌입하기로 했다. 연주회 소식을 늦게 알았고 의견을 조율하는 일과 MR을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연습할 기간이 삼사일 밖에 남지 않았다.




공단에서는 팬데믹 상황을 감안, 매년 성대히 개최하던 행사를 조촐하게 하여 예선을 동영상으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때문에 우리는 MR에 맞추어 노래 연습 후 동영상을 찍어 마감 시한 안에 제출해야 했기에 그로부터 3일은 거의 합숙을 하듯, 마치 국제 콩쿠르라도 나가는 양 잠만 집에서 자고 연습에 매진했다. 


가족들은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엄마가 대체 왜 저러시는 거지…??” 하는 눈빛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선 동영상을 찍을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연습이야 미사랑에서 한다지만 녹화를 위해서는 마이크와 스피커가 갖추어진 녹음실이 필요했다. 여기저기를 물색한 끝에 W 친구 남편이 사용하는 음악실을 빌렸다. 


미사랑에서 첫 연습을 시작했을 때 참으로 암담했다. 우리가 선정한 곡은 박은옥, 정태춘 님의 “봉숭아”였는데 무척 곱고 서정적이지만 쉽지 않은 노래였다. 연습이 시작되자 음정, 박자는 고사하고 모든 것이 중구난방이었다. 지도자, 리더가 없으니 시작부터 배가 산으로 가듯 각자의 의견들이 남발했고 매사에 엇 박자가 이어졌다. 30여 년을 공직자로 지내며 직원들을 지휘해 왔던 각자의 품새가 어련했겠는가! 그러나 각자의 주장이 그렇게 컸어도 무엇이든 합의만 되면 적극 수용하는 포용력 또한 남달랐다. 


갑작스레 노래 지도를 받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저 “연습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틀을 꼬박 미사랑에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처음 휴대폰으로 녹음한 우리의 노래를 들을 때는 도저히 귀 열고 들어줄 수 없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Go~!!


드디어 마지막 녹화를 하는 날이다. 청바지에 흰색 상의로 드레스코드를 맞추고 기타와 멜로디언을 가지고 멀리 마포에 있는 녹음실을 찾았다. 이제 마지막이다. 무슨 수를 쓰던 오늘 안에는 녹화를 마쳐야 한다. 마음속에 배수의 진을 치듯 각오를 다지고 녹화를 진행했다.


우리는 영상 녹화니만큼 노래를 부르면서 가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자연스러운 표정을 연출하기로 했다. 처음엔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웃음보가 터져 나와 수차례 녹화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노래하는 가운데 점차 서로가 한 마음이 되어 갔다.


인간의 집중력이란 실로 대단하다. 음치 단계를 겨우 벗어난 우리 『F3』의 노래 실력이었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할수록 박자와 음정이 교정되었고 화음을 담당한 나 조차도 가장 아름다운 화음을 내기 위해 조금씩 진화해 갔다. 결국 그날 저녁 무렵 최종적으로 가장 괜찮은 영상 하나를 선정, 보내는 것으로 결정하고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날 밤 우리 『F3』 멤버 모두는 아마 나처럼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진행 과정에서의 갈등조차 다 잊고 연습에 매진하는 가운데 점차 뜨거워져 가던 우리의 열정, 갈수록 다듬어지는 노래실력에 저마다 희열을 느낀 것이다.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몸으로 체험한 바로 그 기쁨과 흥분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최종 결과는?


9월 중순쯤 결과 발표가 홈페이지에 떴다. 그러나 웬걸? 예선은 통과될 것이라 기대했건만 눈을 씻고 보아도 수상 명단에 우리는 보이지 않았다. 팬데믹 상황이 악화되자 주최 측에서 예선이라고 했던 동영상 심사를 곧바로 본선으로 간주하여 분야별 총 10개 팀 중 중창팀에서 세 팀 만을 수상팀으로 선발한 것이었다. 


엄청난 에너지와 노력을 투자했건만 단 한 방에 허무하게 모든 것이 끝나고 만 것이다. 오호라 이럴 수가~!! 믿거나 말거나 중창팀에 장려상이라도 한 팀 더 할애했다면 당연 우리 차지였을 것을...!! 도대체 예선도 없이 한 방에 세 팀이 무어란 말인가!!


우리는 아쉬움을 곱씹으며 팬데믹 상황을 연출한 하늘을 잠시 원망했다. 그러나 『F3』의 첫 도전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엄청난 쾌거였고 피나는 노래 연습으로 그 어느 때 보다도 뜨거운 늦여름을 보냈기에 우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행복의 여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지난해 연말, 나는 우편함에 꽂혀 있는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 하나를 발견했다. 실로 얼마 만에 받아보는 아날로그식 카드인지 반가움이 앞서 발신자를 확인했더니 W였다. 산타 복장을 한 세 명의 어린이 (『F3』?)로 장식된 카드를 열어보니 지난 연주회 준비과정에 있었던 갈등에 대한 사과의 내용이 포함된 감동적인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는 연습과정에서 다 잊은 일이었는데, 그리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치열한 의견 나눔일 뿐이었는데. 나는 W의 진솔한 마음에 감동되어 아직까지도 그 카드를 책꽂이 가운데 세워 놓고 수시로 바라보며 지금도 그때의 희열을 다시금 되새기곤 한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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