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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율 Oct 25. 2022

가끔은 휴식이 필요한 법이니까_볼리비아 우유니

 급히 다음 도시를 건너뛰고 바로 우유니 사막으로 향했지만 무려 고도가 3천 미터에 달하는 우유니에서 고산병은 최고에 다다랐다. 이제는 한겨울 감기몸살처럼 끙끙 앓아누웠다. 

첫날은 코파카바나에서 호스텔 주인이 챙겨준 약 덕분에 그나마 멀쩡한 상태로 우유니 일일투어를 다녀올 수 있었다. 일일투어는 소금사막의 석양까지 볼 수 있는 투어로 우유니 사막에서 머무는 시간이 가장 길다고 했다. 이른 아침 지프를 타고 달리며 라마 친구들을 만나고 버려진 기차역도 만났다. 한참을 달리자 온통 하얀 소금사막이 보이기 시작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해가 뜨거워지자 맨 눈으로는 보기 힘들어 나는 선글라스를 끼며 멋을 부렸다. 

사막 위 한편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 우리는 색색의 의자를 폈다. 하얀 사막 위에 발을 담근 채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지프차 위로 올라가도 된다고 해서 사진을 찍어보기도 했다. 사막 한가운데로 이동한 다음 우리는 장화를 신고 발목까지 잠기는 우유니 사막 위를 마음껏 걸었다. 찰랑찰랑 물에 잠긴 우유니 사막 위에서는 온 세상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역시 우유니는 말도 안 되는 곳이다. 충분히 상상했던 곳인데도 믿어지지 않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그 노을마저도 그대로 투영되어 주변이 온통 노랑에서 주홍, 주홍에서 붉게, 온 세상이 물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단풍이 푸르게 노랗게 그러다가 붉은빛을 마음껏 뽐내다 지고 있는 듯하다. 황홀하다는 표현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고산병도 잊을 만큼 흠뻑 빠져버려서 고산병이 나았나? 잠깐 생각해봤지만 숙소로 돌아오니 다시금 고산병이 시작되었다. 장염과 감기몸살 증상이 모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일이 나기 전에 서둘러 볼리비아를 벗어나겠다 결심했고 다음 날 바로 칠레 국경으로 넘어갈 수 있는 우유니 2박 3일 투어를 떠났다. 


 투어에는 다수의 일본인과 미국, 이탈리아 4개국의 친구들이 모였다. 나는 첫째 날부터 위태위태했다. 이동하는 내내 멀미까지 겹쳐서 고산병은 극도에 달했고 결국 뒷좌석에 드러눕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인 친구가 약을 챙겨주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식사메뉴도 너무 훌륭했지만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소금사막에 도착해서는 너무 아파서 어떻게 걸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예쁜 소금사막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같이 재밌는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동시간과 투어시간에 비해 사막에 머무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일행 모두 너무 아쉬워했다. 첫날 우유니 사막 투어를 다녀온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저녁에는 겨우겨우 쌀을 구해 미음을 만들었고 일본인 친구가 챙겨준 간장을 뿌려 겨우 넘길 수 있었다. 다 같이 화기애애한 저녁시간이었지만 나는 도저히 힘이 나질 않았다. 일찍 잠이 들었는데 내가 자면서 끙끙 앓았나 보다. 한 친구가 그 소리에 걱정이 되었는지 침낭을 선뜻 내어준다. 

‘너 더 이상 아프면 안 돼’ ‘너 덕분에 우리가 더 많이 먹었으니 괜찮아’

웃으며 나를 배려해주는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 계속 나를 걱정해주고 배려주는 게 고맙고 미안했다. 예쁜 풍경을 보러 여행 온 친구들인데. 함께 웃으면 같이 신나게 여행하는 친구가 되고 싶은데. 

둘째 날은 온천을 갔다고 하는데 나는 차 안에서 기절하느라 기억에 없다. 너무 춥고 힘들어서 숙소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던 터라 온천이라는 말에 귀가 쫑긋했지만  이미 지나고 난 후였다. 

저녁에는 다 같이 맥주파티를 한다고 했지만 난 또 내내 기절해있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아파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얼른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투어를 함께 하는 친구들에게도 너무 미안했다. 제대로 말도 걸 수 없었고 식사도 거의 함께 하지 못했다. 그들은 언제나 내 몫의 음식을 챙겨주었고 얼마나 아픈지 물어봐주었고 약도 구해다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함께 대화를 나누고 사진도 찍어주는 재밌고 유쾌한 여행친구도 되어주지 못했고 괜히 짐이 된 것만 같아 내내 미안하고 아쉬웠다.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라는 우유니 사막에 왔는데 나는 하나도 즐겁지가 않다.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마음에 억지로라도 즐기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나 힘든데 좀 쉬어도 될까?

  


  정신없이 지나간 투어의 마지막 날, 칠레 국경에 도착해 아타카마로 향하는 버스를 겨우 탔다. 다행히 두통과 오한은 사라졌지만 며칠 내내 끙끙 앓았더니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며칠 푹 쉬고 싶은 마음이지만 이곳은 그러기엔 어수선한 도시였다. 날씨마저도 무미건조했다. 

아타카마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도시인데 덕분에 밤하늘의 별은 끝내줬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큰 감흥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메마른 기분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아니 일상이라는 것이 매일매일 즐거울 순 없지만 무엇을 보고 들어도 컨디션이 나아지질 않으니 기분이 계속 축축 처졌다. 좀 움직이면 나아질까 싶어서 다음날 투어를 떠났다. 

달의 표면을 닮았다는 지형을 둘러보고 선셋까지 보는 <달의 계곡> 투어였다. 신기하고 멋진 풍경을 보면 기분이 나아지겠지.

사구와 모래절벽으로 이루어진 길을 한참을 걸었다. 모래 사이로 하얗게 반짝이는 소금의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독특한 빛깔의 모래산과 운석처럼 생긴 바위들이 신기했다. 정상에서 본 풍경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것처럼 광활하고 신비로웠다. 달 착륙 장면에 대한 진실공방이 한창일 때 이곳 아타카마에서 촬영한 것이 아니냐는 설이 나돌기도 할 정도로 이곳의 지형은 달 표면과 매우 닮아있다. 

이곳을 왜 달의 계곡이라고 부르는지 단번에 알고도 남았다. 마침 사막 뒤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고 점점 더 황홀한 풍경으로 온통 물들고 있었다. 신비로운 행성으로 변하고 있었다. 충분히 멋있고 흥미로운 투어였지만 투어가 끝나자마자 극도의 피로가 몰려왔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더 큰 감동을 받았을 텐데’ 아쉬움과 여운이 떠나질 않았고, 또 아프다는 생각에 짜증이 몰려왔다. 몸이 아프니까 마음도 구겨졌다. 

투어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차라리 공원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싶었다. 푹신한 침대 위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억지로 여행을 이어나간다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인 것 같았다. 몸살 기운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입맛도 의욕도 없고 컨디션이 엉망이다.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내가 왜 여행을 하고 있지? 한국으로 돌아갈까?”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숙소로 돌아와 정말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검색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여행지를 보며 일정을 검색하다 문득 이대로 멈추기에는 후회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모레노 빙하도 이과수 폭포도 아직 보지 못했는데. 

내 버킷리스트인 ‘토레스 델 파이네’ 트래킹도 해보고 싶은데.

그래, 마음처럼 안될 수도 있지. 몸이 아픈 거잖아.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되지.

몸이 아프면 쉬어주면 돼. 그럼 나아질 거야.

그래, 지금은 잠시 쉬어가야 하는 타이밍이야! 힘들면 쉬어가도 돼.  

긴 여정에는 휴식도 필요한 법이니까.     

그렇게 나를 다독이자, 정말로 힘이 조금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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