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7일
하루는 이방인으로, 하루는 재외동포로 바쁘게 살고 있는 나다.
남편이 우편함에서 뭔가를 들고 오더니 수심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남편은 여기저기 자기의 인맥을 통해 뭔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뭔가 큰일이 터졌나보다 나는 걱정되기 시작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나에게 235유로의 벌금이 나온것이다. 2018년 6월에 나는 판테온에서 한 가족과 투어를 하다가 지방 경찰의 단속에 걸려 175유로의 벌금을 냈다. 사복 차림의 경찰들은 판테온 안에서 가이드 자격증 없이 가이드 투어를 하는 사람들을 적발하고 있었는데, 마침 나는 한국에서 온 한 가족과 함께 투어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 자리에서 벌금을 물렸다. 투어에서 받을 돈보다 훨씬 더 큰돈을 내야 했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가 딱지를 몇 번 떼인 것 외에는 벌금을 내본 적이 없는 나에게서는 비열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고 다리가 후들거렸었다. 기가 죽은 모습으로 남편과 가족의 걱정과 위로를 받으며 우체국에 가서 바로 돈을 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났다. 누가 그 일을 기억할까 싶을 때 벌금고지서가 다시 나온 거다. 3년도 더 지나서. 원래의 금액보다 더 자란 235 유로가 돼서 나왔다. 벌금을 냈다는 증거가 있어야 했다. 집안을 다 뒤져서 영수증을 찾아낸 건 남편이었다. 그 이후로 여러 날을 여기저기 전화를 해댄 남편 덕에 벌금을 다시 낼 필요는 없다는 것과, 국세청에 벌금을 냈다는 확인 정도를 거치면 해결될 거라는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보다 긴장하고 걱정하는 남편이 난 좀 이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영수증도 있고 벌금을 물렸던 경찰도 내가 벌금을 낸 사실을 확인해 주었는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게 오히려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다.
법을 위반한 사람이 있고, 벌금을 물린 사람이 있고, 벌금을 낸 사람이 있다면 문제는 해결된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벌금을 물린 사람이 있고 벌금을 낸 사람도 있는데 벌금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벌금을 낸 사람은 증거를 가지고 있고 벌금을 받은 사람이 챙기지 못한 것인데 왜 벌금을 낸 사람이 다시 벌금을 받을 사람을 위해 이러저러한 행정처리를 해야 된다는 걸까 가 핵심이었다. 집에서 먼 사무실까지 영수증을 가지고 가서 새로 나온 벌금 고지서를 취소하던가, 온라인상으로 사람을 만나서 벌금을 취소하던지가 내가 가진 옵션이었다. 아니면 한 가지가 더 있는데 PEC이라는 우체국 전자 인증시스템을 통해서 영수증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결국은 온라인 미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고 날짜를 기다렸다.
오늘 드디어 온라인 미팅을 했다. 미리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고 20분 전부터 정해준 대로 들어가서 기다렸다. 상대방은 카메라가 고장 났다는 이유로 얼굴을 안 보여준다. 나는 유창하지 못한 이탈리아어로 사건의 전말을 말한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고 있는 이야기다. 카메라 앞에서 영수증을 흔들고 영수증 번호를 보여준다. 그는 영수증 번호를 조회하더니 국세청 단말기에는 내 기록이 없다고 한다. 난 경찰과 통화한 내용을 말하고 내게 답변해준 경찰의 이름까지 말하지만 요지부동이다. PEC을 통해서 영수증을 보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난 억울했다. 내가 한 위법행위의 대가로 벌금을 냈고 시간이 벌써 3년도 더 지났는데 그사이에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못해서 누락이 되었다면 누가 미안해해야 하는가. 오히려 내게 목소리를 높이고 법이 이러하므로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니 납득하기 싫어진다. 난 가능한 한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의 목소리에는 엄청난 짜증과 화가 들어있다. 콜센터 직원의 목소리다. 이번엔 나도 지지 않는다. 최근의 엄한 사정에 나도 몰릴 만큼 몰린 거다. 난 나의 억울함과 그들의 업무태만에 대한 볼멘소리를 어눌한 이탈리아어로 한다. 공무원이 일을 잘 못하면 시민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어느 나라 법인가 말이다. 나는 이미 치를 만큼 값을 치렀다. 벌금고지서를 받고부터 남편과 내가 빼앗긴 시간과 스트레스, 나아가 나의 모든 정보를 웹 인증을 위해 팔아야 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의 무능함을 대신해서 일을 해서 그들의 안정과 행복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시민은 뭐 봉인가.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PEC로 보내고 싶지 않다고. 팩스로 보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 없단다. 벌써 수년 전부터 이탈리아에서는 팩스로 사무를 처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제안받은 방식 중 하나를 따르지 않고, 벌금을 내지 않으면 나의 자동차를 정지시키거나 다른 방법으로 재산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가의 권한으로 말이다. 나는 벌금을 냈는대도 말이다. 억울하고 원통하다. 나는 사무실로 바로 가서 해결하겠노라고 말한다. 약속을 정하기 위해 전화로 동료와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수화거 건너편의 나에게도 잘 들린다. 그는 동료에게 나와의 약속을 정하라고 말해주고 빠른 속도로 나에게 일이 이러저러하게 진행 될 거라고 말한다. 나는 다 못 알아듣는다. 아직 이렇게 빨리, 화가 잔뜩 나서 말하는 사람의 말을 이해할 만큼 이탈리아어가 능통하지 못하다. 결국 답답해진 그는 이메일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의 이메일을 줄 테니 나에게 스캔을 해서 보내라고 한다. 나는 다시 한번 카메라 앞에서 고지서와 영수증을 흔들어대며 확인을 받는다. 이 소동을 옆에서 보는 남편도 덩달아 흥분해서 연속 말을 해대고, 화가 날대로 난 그의 목소리 속 열기를 느끼면서도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내 방식대로 확인한다. 이제야 좀 로마 시민으로 살아가는 걸 배워간다 싶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확인과 확신을 얻고 나는 만족을 한다. 상대방도 지쳤다. 나는 다시 한번 어필한다. 그리고 시스템적인 답을 해대는 그와 단절을 느낀다. 결국 난 사무실을 가지 않아도 되고 PEC도 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고지서와 영수증을 스캔을 받아 이메일로 전송하고, 받았다는 확답을 받으면 고지서가 취소된다고 한다. 관료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일상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리고 싸움닭이 돼가는 첫발을 떼었다. 이번에는 나의 태도가 내 맘에 든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제 이메일만 보내면 다 해결된다고 하니 여기까지 온 것만도 대견해해야 할 판이다. 잠시 후 알지 못하는 상대로부터 전화가 온다. 사무실에서 온 전화다. 새로 나온 벌금을 취소하기 위해서 약속을 정해야 하는데 날짜를 확정해달라는 전화였다. 아까 통화하면서 사무실로 가겠으니 약속을 정하자는 말에 대한 답 전화였다. 나와 통화를 한 사람이 다시 그의 동료와 소통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다시 한번 시민인 내가 설명을 해야 했다. 이미 이메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으니 사무실로 갈 필요는 없어졌다고.
내 밥을 챙겨 먹기가 이렇게 힘든 게 요즘의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