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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미 Mar 24. 2022

구름이 아버님 먼지 씨

 먼지가 처음 오던 날 알레와 난 테르미니역으로 갔다. 미리 준비한 이동장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는 기대와 흥분이 더 커서 새 식구와 살아갈 걱정은 잊고 있었다. 마치 불길한 거래를 하는 사람들처럼 테르미니 옆 주차된 차들 앞으로 다가가 고양이를 데리고 온 사람과 메시지를 보내고 받으며 은밀하면서 조금은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것에조차 전에 없던 즐거움을 느꼈다. 드디어 고양이를 데리고 온 남자가 자동차 뒷문을 열고 상자를 열었을 때 오물조물 꼼지락대는 회색빛 아기 고양이들이 보였다. 그 남자는 대충 한 마리를 집어 올려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알레와 난 너무 흥분해서 이미 손에 들린 애가 사진으로 보던 그 애인지 아닌지를 물어볼 호흡조차 못했다. 우리는 새끼 고양이를 건네받자마자 돈을 지불하고 서둘러 지하철을 타러 갔다. 손바닥도 다 채우지 못하는 작은 생명은 그렇게 납치되듯이 우리에게 왔다. 바깥에서 일이 있었던 나는 남편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집에 왔는데 남편은 그때까지 먼지를 소파에 올려둔 채 아무것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어린 먼지는 남편이 놓아둔 곳에서 몸을 웅크리린채 붉은 입속을 보이며 엄마를 찾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겨우 550그램이었다. 


 먼지가 자라서 발정기에 이르렀을 때 우린 여자 친구를 찾아주었고 구름이와 형제들이 태어났다. 구름이를 데려오기 전 먼지는 중성화 수술을 당해야 했다. 이젠 구름이도 중성화 수술을 당한 처지다. 먼지는 벌써 3년 10개월, 구름 이는 2년 7개월. 둘 다 성묘가 되었다. 잔병치레는 먼지가 더 많고 크고 작은 사고는 구름이가 더 자주 친다. 이렇게 고양이들과의 삶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고양이들을 데리고 산다고 하지만 종종 고양이들이 우리를 데리고 사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자주 든다. 우리가 먼지를 데려왔고, 구름 이를 낳게 했고, 사료와 간식을 사 주지만 그것 외에 우리가 녀석들을 통제하거나 제압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 오히려 녀석들이 우리의 삶의 테두리를 정하고, 그들의 시중을 들게 하고, 그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삶의 큰 부분을 포기하게 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발치에 있는 구름이와 인사하고 거실에서 자고 있는 먼지에게도 인사한다. 아직 상자에서 자고 있던 먼지는 내 손길이 달갑지 않은 듯 데면데면  받아들인다. 가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야 녀석이 기뻐한다고 믿는 나는 녀석의 시근퉁한 반응에 잠깐 멈칫한다. 잠깐 스친 생각은 녀석이 나를 거부하는 건 아닐까? 남편의 그림자가 된 녀석에게 난 이제 대수롭지 않은 존재가 된 건 아닌지. 흠칫 놀란다.


 작년 12월부터 8개월간 난 엄마 집에서 살았다. 그 사이 겨울, 봄, 여름이 지나갔고 남편은 혼자서 두 녀석들을 지극으로 돌보며 혼자 지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는 해묵은 때와 바닥에서 서걱대는 모래먼지와 셋만의 단단한 친밀감이 넘쳤다.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았다. 다시 3개월이 지나고 구름이와의 관계는 좀 좋아졌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사랑을 듬뿍 받는 이 고양이들은 누가 자기들을 고치거나 길들이기를 거부한다. 일방통행의 동행. 녀석들의 생래가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은연중 남편과 경쟁을 하고 있었나 보다. 평생 고양이를 좋아하고 관찰하며 살아온 나보다도 더 고양이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남편에게 두 녀석의 무한한 신뢰를 다 뺏기고, 아침에 잘 잤냐고 손을 내미는 나를 외면하는 녀석의 행동에 심장이 따끔거린다. 이렇게 작은 것에도 마음을 다치도록 내주고 있는 나를 본다. 


 마음이 아파 죽는 법은 없다고 학원강사 시절 동료가 말했었다. 물론 마음이 아파 죽지는 않는다. 작은 찰과상이 남겠지. 수많은 찰과상이 남아 마음이 누덕이가 돼도 우리는 산다. 하물며 고양이의 작은 행동이 주는 찰과상쯤이야. 하지만 먼지야, 구름이 아버님 먼지 씨, 너무 쎄하게 엄마를 대하진 말아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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