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로 알아보는 부부관계1.

by 하나왕비님

어린왕자를 읽으며 들여다보는 부부관계 1. 서론 -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는 이유>

— 『어린왕자』 서론에서 시작된 질문

『어린왕자』의 서론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어른들이 아이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더 오래 남는 장면은 아이가 결국 설명을 멈추게 되는 과정이다.


아이는 처음에 그림을 보여준다. 이해받지 못하자 설명한다. 그래도 통하지 않자 다시 설명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멈춘 이유는 단순하다.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알아들으려는 마음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읽으며 한 독서모임 참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제 말을 이해하려고 듣는 게 아니라, <따진다> 라고 듣는 순간이 있어요.”


그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이 대화로 이어지지 않고,순식간에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자리로 넘어가는 순간.

그때부터 말은 소통이 아니라 다툼의 시작이 된다.

(남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부 관계에서 우리는 비슷한 과정을 반복한다.

처음에는 말한다.

“나는 이런 뜻이었어.”

“그때는 이런 마음이었어.”


하지만 같은 오해가 반복되면, 설명은 점점 힘이 된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미 결론을 내려두고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참여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말하다 보면 싸움이 되잖아요. 그런 모습이 아이에게 그대로 보일까 봐 차라리 멈추게 돼요.”


부부간의 다툼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기에, 설명은 멈춘다.

말을 안 해서 평화를 지키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선택의 대가는 내 마음의 침묵이다.


여기에 각자의 어린 시절 경험도 겹쳐진다.

부모의 다툼을 지켜보며 자랐던 기억,

‘아이들 앞에서는 싸우면 안 된다’는 강한 믿음,

갈등 자체를 불편해하는 평화주의적인 성향.


이 모든 것들이 쌓여우리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차라리 내가 멈추는 게 낫겠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말할 능력이 없어서도, 관계에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다. 설명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을 때, 말이 곧 다툼으로 번질 게 보일 때, 내 마음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신호를 받을 때,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말을 줄인다.

겉으로 보면 조용해진다. 문제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관계에서 한 발 물러난 자리일 수 있다.

『어린왕자』 속 화자는 더 이상 그림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보여주지 않기로 선택했을 뿐이다.

부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감정이 사라져서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시 설명하는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 침묵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말을 안 해?”가 아니라,

“왜 말하는 게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을까?”

부부 관계는 대화의 양으로 깊어지지 않는다.

서로가 다시 설명해도 괜찮겠다고 느낄 때,

그때 비로소 관계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린왕자』의 서론은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설명하고 싶은 존재로 남아 있는지,

아니면 이미 설명을 포기한 상태는 아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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