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는 누가 처음 말한걸까
중간만 하면 잘하는 거라고, 잘한 거라고
by 화화 hwahwa Oct 25. 2024
'만보'는 누가 먼저 정한 거야?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가장 먼저 정했을 '만보'를 채우며 걷다 보니 그 숫자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졌다.
왜 하필 9천 보도 만 2천 보도 아닌 만보 걷기를 목표로 하는가에 대한 것. 어쩌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될 법한 사소함에 대한 꼬리물기의 궁금증은 어느 날 습관처럼 걸으면서 풀리고 말았다.
역시 뭐든 말로 듣는 것보다 행동해 보고 경험해봐야 한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 그것들 중 하나가 이 '만보 걷기'에도 적용이 되었던 것이다.
몸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어느 날은 칠천보쯤 걸었고, 또 다른 날에는 컨디션 난조로 사천 보를 채우기가 버겁기도 했다. 아슬아슬하게 구천 보를 조금 넘긴 날에는 뭔가 찌푸둥한 느낌적인 느낌. 그랬다. 어떻게든 만 보를 채우지 못한 날은 운동을 한 건지 만 건지 분간조차 어려울 정도의 꺼림칙함이 남아 맴돌았다. 하루는 명색이 걷기 모임답게 함께 모여 걷다 보니 만 4 천보를 훌쩍 넘긴 날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일찍부터 까무러질 듯 쏟아지는 졸음과 함께 '오늘 좀 무리했네'라는 스스로의 깨달음이 찾아왔을 때.
'만보'의 적당함에 대해서 인정하기로 했다. '아, 이래서 만보구나'. 적지도 많지도 않은 딱 중간. 그게 하루 만보라는 걸음수였구나. 이렇게 적당함에 대한 철학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나는 사자성어 하나 '과유불급'. 과한 것은 모자람만 못한 것이었다. 적은 것은 없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과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중간.
만보를 걷고 다음 날,
샤워를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가뿐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실제로는 똑같을지 몰라도 살이 빠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고.
평균이란 게 이토록 괜찮은 거였구나, 의미 있는 거였구나.
살면서 자주 저 멀리 높은 것을 쫓기에 '적당함이 좋을 때도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다. 뛰어나지 않아도 괜찮고 해냈다는 '몸의 상쾌함'만 있다면 걷기는 그걸로 충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