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덜 지랄스러운 여름
7월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건들팔월이다.
고작 2주간의 생을 위해 매미는 맴~매앰, 맴~매앰 아직 울어대지만, 폭염도 이제 기세가 꺾였다.
8월의 첫날 아침, 나는 H의 방으로 향했다. 늦잠 자는 H는 이불을 돌돌 말고 자고 있고, 그 틈새로 발가락이 삐죽 나와 있었다. 나는 어김없이 휴대폰을 꺼냈다. 이 더운 여름, 출근 전 나만의 소확행은 H의 발가락을 몰래 찍는 것이다. 내 휴대폰 사진첩에는 작년 여름도, 올해 여름도 H의 발 사진이 유독 많다. H의 생부는 솜털 보송보송한 아기도 아닌데 왜 코끼리 발바닥을 찍냐, 변태냐며 타박이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코끼리 발바닥이 얼마나 말랑말랑한지, 얼마나 조용히 움직이는지를.
“코끼리 발바닥 완전 천연 쿠션이래. 발바닥이 젤라틴, 지방조직으로 되어 있어 무게가 6톤이 넘어도 충격을 흡수해 발걸음이 조용하다는 거 몰랐지?”
나는 바쁜 아침에도 코끼리 발바닥 예찬을 멈추지 않는다.
“그거 알아? 넓고 푹신푹신한 발바닥 덕분에 풀, 나무껍질, 물만 먹고도 하루 최대 40㎞ 이상 이동할 수 있대. 그런데 진짜 신기해. 육류를 전혀 먹지 않는다는데 마른 코끼리를 왜 우리는 한 번도 못 봤지? 하하하하. 더 재미있는 코끼리의 매력이 뭔 줄 알아? 외모와 달리 코끼리 발바닥이 엄청 민감하다네. 그래서 열대 초원, 숲, 습지 등 다양한 지형에서도 큰 소음 없이 이동할 수 있어서 포식자나 인간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한대. 그게 코끼리의 생존 전략법이래.”
H의 발은 코끼리의 발처럼 넓고 말랑하다.
나에게 H의 발은, 성장의 기록이자 묵묵한 견딤의 징표다.
H의 발에서 삶을 찬미한다는 건, 나만의 가장 조용한 저항이기도 하다.
H의 검은 눈동자가 사라진 건, 지난해 2월이었다.
갑작스러웠다. 특별한 징후도 없이, 설날 아침 떡국 한 그릇 맛있게 먹고 나더니 흰자만 보이게 눈을 까뒤집더니, 이후로는 동태 같은 눈을 장착했다. 초여름에는 갈색 서클렌즈를 끼고 뱀처럼 독기 어린 눈빛으로 엄마, 아빠, 선생님, 세상을 향해 날을 세웠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병이 들어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해, 알아서 까먹거나, 알아서 말아먹어 제대로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생활로 가족들 속을 뒤집어놓았다. 방에 콕 박혀 나오지도 않고, 샤워하러 들어가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물 틀어놓고 함흥차사. 그만 좀 나오라고 해도 못 들은 척하기 일쑤. 홍대 가는 날이면 화장하고 옷 입는 데만 기본 3시간. 양말은 홀딱 뒤집어 놓고, 옷가지는 온전히 벗어놓은 것 하나 없이 방바닥에 뒹굴뒹굴, 먹다 남은 과자 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어 “먹고 난 쓰레기는 좀 치웁시다” 한마디 했다가 세상만사 귀찮음과 짜증이 잔뜩 베인 말투로 “치우려고 했어(요)”라는 H의 한마디에 나의 이성은 퓨즈처럼 날아갔다.
H는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나오는 호르몬을 이유로, 눈에 뵈는 게 없어 무서울 것도 없는 나이를 빙자해 싸가지 없는 말투와 희번덕한 눈알에 늦잠, 지각, 화장, 거짓말 등 평소 ‘안 하던 엉뚱한 짓’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매일 저녁 서로 생채기 내며 진을 뺐다.
“도대체 누굴 닮은 거야?”
상전, 상전 세상에 이런 상전이 따로 없다.
진상, 진상 세상에 이런 진상이 따로 없다.
내가 낳은 건 상전인가, 진상인가.
나는 H의 눈빛 하나, 행동 하나, 가시 돋친 말 한마디에 못 견디게 서운했다.
지난해 여름, 평생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싸우고, 얼마나 울었는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는지, 가는지도 몰랐다.
H 때문에 하루에도 열두 번도 넘게 빈 정 상하고, 자다가도 울화가 치밀어 올라 이불킥을 하고, 운전하다 나도 모르게 쌍욕이 튀어나오는 것도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까지 꼬박 1년 하고도 반년이 걸렸다.
H의 지랄발광도 정상, 나의 지랄발광도 정상.
H는 눈물, 콧물을 총동원해 왜 내 마음을 몰라 주냐, 공부하기 힘들다는 둥 밑도 끝도 없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시전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로는 부족한, 그냥 지랄발광의 연속이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 감정이 초 단위로 진폭을 넘나들었다. 이러다 내가 제 명에 못 죽겠다 싶었다.
“일부러 나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니?”
“아무리 호르몬의 노예라지만 정도껏 하자.”
“나도 힘들어. 제발 살려줘.”
“이번 주부터 용돈 없고 아이패드 사용금지야”
회유, 협박, 읍소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외계인은 지구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외계인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리였다.
‘이해’는 싸움과 갈등의 시작이었다.
나는 H로부터 멀어지기로 했다. 가능한 아주 멀리.
“두 발로 스스로 학교 가는 게 어디야, 지각이 뭐 대수냐”
“두 손으로 양말 신고 옷 입고 화장하면서 꾸밀 줄 아는 것에 감사”
“시험 시간에 안 자고 수행평가 준비하고 자퇴 안 하는 것 또한 기적”
“친구 만난다고 샤워하고 시간 들여 화장하고 이 옷 저 옷 골라 입어보는 아이들이 더 성실하다는데”
‘지랄 총량의 법칙’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중2 사춘기 때 지랄하는 게 낫지 싶었다.
“그래 어서어서 지랄해라”
“충분히 분노하고, 미친 듯이 흥분하고, 원 없이 지랄하거라”
H의 지랄은 잘 자라고 있고, 잘 여물고 있다는 증거다.
H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속도를 따라가는 중이었다.
욕망을 억누르지도 말고, 자연스럽게 배출하고 네 안에 있는 그 무엇이 됐든 분출하다 보면 언젠가는 바닥이 보이겠지. 누구든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저마다 한평생 쓰고 죽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있다고 하니 맘껏 소진하는 수밖에.
기세등등하던 여름도 이내 가을 앞에 고개를 떨군다.
피 터지게 싸워놓고 라면 먹자는 한마디에 배시시 웃는 H의 지랄도 조금씩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지난해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2025년 조금은 덜 지랄스러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H의 여름은 뜨겁고 치열했다.
모든 면에서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모든 것이 컸다. 키, 몸무게, 발 그리고 마음도.
45년 살 동안 변변한 ‘지랄’ 한번 못 해 본 나는 H의 여름이 부럽다.
화내고, 싸우고, 울고, 미워하고, 또 웃고. 그 모든 것이 성장의 기록이니까.
어린 시절 지랄하면 개구쟁이라 하고 젊었을 때 떠는 지랄은 청춘이고, 낭만이라 한다는데 나는 개구쟁이 시절도, 청춘과 낭만이 넘치는 시절의 기억도 없다. 비빌 언덕이 없었다. 팍팍한 현실 앞에서 마음 놓고 투정 한번 부릴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거칠기만 하던 삶 속에서 뭐든 척척 알아서, 반듯하게 정석대로, 가정에서 학교에서 미운털 박히지 않게 조심하고 행동 하나에 신경 쓰며 지냈다. 지금껏 나를 힘들게, 슬프게, 아프게 했던 것들이 나의 시절을 바쳐 사랑한 것들이지만, 가끔은 미친 척하고 지랄 한 번쯤을 해봤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매미가 목을 놓아 울고 있다. 공기가 달고 시원하다.
나는 올해, 지랄을 구박하지 않고 여름을 견뎠다.
매일 아침 H의 코끼리 발가락 사진을 찍으며 웃고, 10주 동안 매주 한 편의 에세이를 마감하고, 폴댄스를 배우며 근육을 키우고 보디라인을 만들었다. 폭염에도 지치지 않고 초록 넝쿨을 뚫고 하늘로 치솟는 능소화를 닮은 여름이었다.
올해의 여름은 아직도 뜨겁지만, 어딘가 단단해졌다.
지독한 더위 뒤에 오는 선선한 날이 얼마나 달가운지 이제 모르지 않으니까.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도 H는 깊이 잔다.
나는 몰래 휴대폰을 꺼내, 다시 한 장의 코끼리 발바닥을 찍는다.
이제는 안다.
사소한 순간들 속에 기쁨은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온다는 것을.
그냥 그렇게 이 계절 가면 저 계절 오듯,
이 여름과 가을 사이 곳곳에 잘 숨어 있는 행복과 숨바꼭질하 듯 지내나 보면
가끔은 아주 조용히, 아주 부드럽게.
코끼리 발바닥처럼.
창밖은 여름, 안녕! 지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