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시절 겁이 없었다.
새치기하는 어른에게 “줄 서세요”라고 말하는 일이 두렵지 않은 아이였다. 스승의 날 교탁 위에 놓인 현금 봉투는 감사의 표현이라기보다 설명되지 않는 풍경처럼 보였다. 특별한 날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다 머리카락이나 이물질이 나오면, 어른들은 대개 조용히 빼내고 그냥 먹으라 했다.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괜히 일을 키우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내게 그 말은 예의가 아니라 회피처럼 들렸다. 나는 반드시 식당 주인과 종업원에게 알렸고, 주의를 요청했으며, 사과를 받았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유난스럽다고 했다.
나는 듣기 좋은 말만 골라하는 어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꾸미고 숨기고 포장하는 능력이 처세술로 칭송받는 장면들을 보며, 나는 세상이 너무 쉽게 안심한다고 느꼈다. 박수 치는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적당히 양념을 칠 줄 아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모습 앞에서, 나는 그들이 똑똑해서라기보다 말을 아끼는 데 능숙하다고 생각했다. 바른말을 두려워하지 않던 나는 세상과 자주 불화했다. 그러나 불화는 내게 파열이 아니었다. 불화는 관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였고, 말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침묵보다 불화가 정직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부딪히며 자랐고, 일종의 생존전략이었다. 그런 내가 세상과 사이좋게 지낼 리 없었지만 불화와 함께 어른이 되었다.
첫 직장에서 나는
할 말과 해야 할 말을 끝내하지 않는 권력자들 사이에서,
아는 체하며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는 지식인들 틈에서,
친절한 척, 덜 교활한 척하는 자본가들 곁에서
무려 16년 ‘언론밥’을 먹고 살았다.
아니, 살아냈다.
정확히 말하면, 버텨냈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삼키는 법을 배웠다. 씹지 못한 말들은 안으로 켜켜이 쌓이고 쌓였다.
나는 잘 웃고, 잘 운다. 소중한 사람의 작은 기쁨에 뛸 듯이 기뻐하고 슬픈 일에는 뒤돌아서 한참을 울고 또 운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강하다고 오해한다. 잘 웃고 잘 운다는 이유로 슬픔에 둔감하고 불안을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내뱉은 말에 갈피를 못 잡기 일쑤고, 누가 밀쳐 내도, 헤집어 놓아도 계속 넘어뜨리려 해도 개의치 않고 우뚝 일어서는 오뚝이라고들 하는데 오뚝이는 개뿔. 나는 오히려 쉽게 멍들고, 쉽게 물러지는 귤에 가깝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조금만 힘을 주면 속이 먼저 상하는 그런 존재다. 내가 오뚝이, 똑순이 별명이 싫은 이유다.
나는 불안을 달고 산다. 불안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이유를 찾으려 애쓸수록 불안은 더 집요해진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큰 목소리로 호출한다. 나는 변명 뒤에 잘 숨는다. 상황 때문이라고, 타인 때문이라고, 시간 때문이라고 설명해 보면 잠시 잠잠해지지만, 그것은 불안을 잠시 재워 두는 일에 불과했다.
나란 사람은 왜 불안할까. 결핍으로 버틴 성실함이 탄로 날까 봐. 흔들리지 않는 계획성과 통제력으로 점철된 일상이 무너질까 봐. 알량한 자존심으로 지켜온 안정된 직장과 사회적 신분을 잃을까 봐.
2021년,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사람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시스템이 붕괴되고 평범한 일상이 멈췄다. ‘사회적 거리두기’ 최고단계인 4단계 시행으로 저녁 오후 6시 이후 사적모임은 2명까지만 가능했다. 대부분의 다중이용시설은 밤 10시까지만 허용했다. 학교는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됐고 결혼식·장례식은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 등 친족만 참여할 수 있었다.
내가 세상과 불화할 때마다 숨을 고르던 수영장과 찜질방도 문을 닫았다. 불안은 갈 곳을 잃고 몸 안에서만 맴돌았다. 숨구멍이 필요했다. 당시 아주 우연한 기회에 지인 따라 ‘폴(Pole) 댄스 1회 무료 체험수업’을 따라갔다. 그나마 마스크로 얼굴을 가릴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차가운 폴 앞에 섰을 때의 부끄러움이란 뭐라 표현하기 어려웠다.
‘돈 내고 이런 낯뜨거움, 쪽팔림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숨구멍을 찾아 가족 몰래 신청한 폴댄스 무료 체험에서 나는 숨구멍은커녕 쥐구멍 찾기 바빴다. 폴과의 첫 만남은 차갑고, 아프고, 쪽팔렸던 게 전부였다. 부끄러움과 통증이 동시에 밀려왔다. 피부는 차갑게 달라붙고, 근육은 즉시 항의했다. 쪽팔림에 정신이 팔려 불안을 느낄 틈조차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좋았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생각들이 몸의 감각 앞에서 잠잠해졌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불안을 이기려 하지 않고, 불안보다 더 또렷한 감각에 나를 맡겼다.
그 후로 나는 잡고, 오르고, 떨어졌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했고, 수없이 실패했다. 몸은 쉽게 올라가지 않았고, 자주 미끄러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알게 됐다. 단단해진다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떨어질 것을 미리 계산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것을. 몸이 먼저 반응하고, 생각이 뒤따르는 순간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폴 탄 지 다섯 회가 지나 2025년, 창밖은 겨울이 왔다.
나는 요즘 잘 웃지도 않고, 틈만 나면 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세상과 타인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해 웃고, 나를 위해 운다.
나는 지금 나와 불화 중이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소중하고, 하루, 한 달, 일 년쯤 느리게 걸어도 괜찮다고. 어떤 형태로든 하루하루 진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배우고 있다.
나는 그동안 불안을 적으로 여겼다. 무식하게 버티면 강해질 줄 알았고, 도망치면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불안은 떨어뜨릴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불안은 내가 아직 살아 있고, 아직 이 삶을 붙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요즘 나는 불안 옆에 고독을 함께 둔다. 고독은 내가 머물러야 할 방이고, 그 방에서만 나는 나를 만난다.
매주 일요일, 나는 비싼 돈을 내고 홍대로 폴을 타러 간다.
폴 앞에서만큼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잡고, 오르고, 떨어질 뿐이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불안한 나, 미숙한 나, 겁 많은 나와 함께 숨을 쉰다.
이제 나는 검정 반바지 대신 얇고 화려한 폴웨어를 고른다.
옷을 하나씩 벗을수록, 나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버텨서가 아니라, 숨지 않아서.
강해져서가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게 되어서.
옷을 벗고서야,
나는 비로소 단단해진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