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겨울⑥ 폴과 자작나무를 대하는 자세

by 찐인구

2026년 1월 24일 토요일 새벽,

공직생활 5년의 마지막 날, 강원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길로 향했다.


KakaoTalk_20260124_115203968.jpg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해서 어여쁜 이름을 가진 자작나무(강원도 인제 원대리)@찐인구


마지막 출근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책상을 정리하고 인사를 건네고 이름표를 떼는 일까지. 익숙한 동선 안에서의 일상에 섞여 있던 시간들이 조용히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공직의 시간은 늘 그랬다. 개인의 온도보다 조직의 온도가 먼저였고, 감정은 최대한 평평하게 유지되어야 했다. 벽지처럼. 지나치게 뜨거워도, 너무 차가워도 미끄러졌다. 나는 그 밋밋한 온도에 맞추는 법을 5년 동안 배웠다. 하루하루는 견딜 만했지만 누적된 무게는 분명히 몸에 남았다.


폴댄스를 시작한 것도 그 무게와 무관하지 않았다.

폴은 차가웠고, 처음부터 친절하지 않았다. 손바닥이 닿는 순간 체온은 금속에 흡수되고 허벅지 안쪽의 살은 본능적으로 도망쳤다. 붙잡을수록 미끄러졌고 힘을 주면 더 아팠다. 폴 위에서는 요령이 통하지 않았다. 버티려 할수록 떨어졌고 내려놓을수록 중심이 잡혔다. 나는 폴댄스를 통해 버틴다는 것이 악물고 견디는 일이 아니라 체중을 속이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5년의 공직 시간은 폴 위의 시간과 닮아 있었다.

버티지 않으면 내려와야 했고, 힘을 빼지 않으면 더 아팠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몸 안쪽 곳곳에는 멍이 쌓였다.

말의 무게, 침묵의 각도, 넘기지 말아야 할 선들.

나는 폴에서처럼 중심을 계산하며 하루를 통과했다.

누구도 대신 올라줄 수 없는 자리에서 나는 반복해서 내 체중을 감당하며 견뎌냈다.

아픈 순간보다 나중이 더 아프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마지막 날, 나는 따뜻한 곳이 아니라 추운 강원도를 선택했다.

자작나무는 하얗고, 가늘고, 잘 부러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쉽게 꺾이지 않는다. 사방으로 가지를 뻗지 않는다. 숲을 독점하지 않고, 빛을 가로채지도 않는다. 대개 백 년쯤 자라고 나면 그 자리를 다른 나무에게 내준다. 오래 붙잡지 않는 생애. 비어 있어 보이기 때문에 더 많은 쓰임을 얻는 몸. 껍질은 불을 옮기고, 나무는 그릇이 되고 종이가 되고 가구가 된다. 살아 있을 때도 베어진 뒤에도 역할이 남는다.


설경 속 자작나무를 보면서 폴에서 내려오는 순간이 떠올랐다.

손을 놓는다고 바로 떨어지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마지막까지 중심을 유지한 채 체중을 천천히 바닥으로 옮기는 동작. 더 매달릴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올라갔기 때문에 내려오는 선택. 자작나무가 숲에서 물러나듯 나는 그렇게 내려왔다.


공직은 나이브했지만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언제 자리를 비워야 하는지를 몸으로 알게 했다. 추운 곳에서 곧게 서는 법과 제때 내려오는 법을 함께 가르쳐준 시간이었다.


공직생활 5년의 마지막 날,

나는 폴에서 내려오는 몸으로 자작나무숲을 걸었다.


숲을 나서며 생각했다.

이제 나는 다른 계절로 갈 수 있겠구나.

혼자 서 있는 법을 배웠고, 내려오는 순간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추운 곳에서 곧게 파란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나무들 앞에서

이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도 된다는 신호를 받았다.


KakaoTalk_20260124_175545874_07.jpg 1826일을 정리하며 순백의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숲길을 걸었다.@찐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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