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 Mar 24. 2023

다 보여주면 재미없잖아

자이가르닉 효과



고등학교 때 어떤 수학시간.      

선생님은 칠판 한가득 문제를 풀어주시다가 결정적인 순간 문제를 풀다 말고 분필을 천천히 내려놓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자 여기까지. 다 보여주면 재미없잖아.  "


   

황당한 교실은 원성이 터진다. 열심히 선생님의 설명을 따라가던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김 빠짐에 어이없어 항의하고, 수업시간 내내 딴짓을 하던 아이들도 예상밖의 선생님의 태도에  처음으로 칠판을 바라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모범생처럼 정색을 한다. 선생님은 뒤집어진 교실에 아랑곳없이 교탁을 정리하셨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풀다 만 문제를 나는 스스로 풀고 앉아있었다. 수포자는 아니었지만 수학과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내가 왠지 그 문제는 풀어보려고 덤볐던 기억이 난다. 공부를 하게 하려는 선생님의 은밀한 수법이 통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그 말의 의도가 효력이 있었다.  


    




 심리학 용어로 자이가르닉효과라는 것이 있다. 식당 종업원이 주문을 받는 동안은 많은 주문을 기억했지만 계산이 끝난 후에는 자신이 받은 주문을 기억하지 못한 것에 착안한 심리기제로 일을 완성하고 나면 그 일과 관련된 기억을 쉽게 잊지만, 해결되지 않은 일은 마음속에 계속 떠오르며 잊지 못하게 한다.

미완의 것을 완성하려는 인간의 심리를 나타내는 자이가르닉효과는 뇌과학의 영역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한다. 인간의 뇌는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글을 읽다가 중간에 오타나 빈 단어가 있으면 그것을 자신도 모르게 채워 읽거나 틀린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바르게 고쳐 읽어 이해하려는 능력 같은 것이다.


선생님이 친절하게 다 풀어주셨으면 그 문제는 내 머릿속에서 잊혔겠지만 해결되지 못한 수학문제는 계속 마음속에 떠올라 찝찝한 상태가 되면 오히려 그 문제를 완성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흘리시며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시고 유유히 교실을 나가셨다.     



"  연애도 같은 방법으로 해야 한다. 다 보여주면 재미없잖아. 보일 듯 말 듯.   "


   

연애라는 말에 사춘기 여고생들의 아수라장이 된 교실을 뒤로하고 이 말을 끝으로 야릇한 미소로 교실을 나서는 선생님의 작은 키와 통통한 아저씨의 뒤 풍채가 그날따라 뭔가 섹시해 보였다.  


         

그러나 어디 연애뿐이랴. 소풍이나 여행의 묘미는 출발하기 전날에 있고 선물은 받기 전에 가장 행복하다. 사랑은 알 듯 말 듯한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는 영화의 한 대사처럼 불완전한 상태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보다 뜨겁다.  



그러나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채우려는 우리의 무의식은 불완전함을 그대로 두지 못하여 자꾸만 무언가를 덧붙여 채우고 있다. 완전하지 못한 사랑을 완성했다고 생각했더니 곧 그 사랑은 따분해진다.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사랑에 나름대로의 다른 옷을 입히고 덧칠을 하여 완전한 사랑을 갈구한다.   


    

아름다운 사랑을 위하여 미완성인 사랑을 아껴두리라.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는 줄 알면서도 완전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이여.      

매거진의 이전글 선녀와 나무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