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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Apr 05. 2023

욕망 없는 사랑을 소망한다

패터슨과 어린 왕자




애덤 드라이버 주연의 영화 패터슨은 뉴저지의 버스 기사이면서 매일매일 틈틈이 시를 쓰는 주인공 패터슨의 일주일간의 일상을 그린 영화이다.  시를 쓰는 버스기사라는 소재보다 나의 마음을 흔든 것은 패터슨과 연인의 관계였다.  가난한 젊은 연인들이 그러하듯 그들은 돈만 없고 모든 것을 가진 듯했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패터슨의 아름다운 연인이 어느 날 기타를 배우고 싶어 형편에 맞지 않는 고가의 기타를 사고 싶다고 했을 때 패터슨은 어떠한 현실적인 핑계도 대지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주저하였지만 기타를 간절히 원하는 연인의 마음을 같이 나누며 그저 사랑하는 연인의 행복을 바란다. 그 순간의 패터슨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게 그 장면이 낯설게 느껴진 이유는 젊은 남녀 연인 간의 에로스적 사랑에서 부모자식 간에나 있을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용인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영화의 끝부분에서 패터슨은 그동안 써온 무수한 시들이 적힌 노트를 실수로 거실에 두고 연인과 외출하게 된다. 귀가했을 때 이미 거실바닥에는 함께 기르던 개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 시 노트가 산산조각 나있다. 그때서로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패터슨은 알아듣지 못하는 개에게조차 싫은 얼굴 한번 하지 않는다.  다시 복기할 수도 없는 소중한 시들을 갈가리 물어뜯은 말 못 하는 개를 나무랄 수 없다면 “그러게 왜 노트는 오늘따라 거실에 두었냐”라고 여자는 위로랍시고 패터슨을 탓할 만했지만, 그녀는 패터슨에게 자신의 죄인 양 미안해한다.  패터슨은 또 어떠한가. 자신의 실수이긴 하지만 잘못을 한, 아무것도 모르는 개에게 탓을 하며 개에게라도 실컷 소리라도 질러 주어도 시원찮을 마당에 틈틈이 썼던 시들이 다 공중분해 되었는데도 눈 한번 흘기지 않고 오히려 넋이 나간 듯 말을 잃은 남자라니. 저들은 분명 인간이 아닌 천사가 아닐까 싶었다.   






                  

어린 왕자는 장미의 아름다움만으로 장미를 사랑한다. 장미의 아름다움이 어린 왕자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지만, 장미인 것만으로 장미를 사랑할 수 있다. 장미는 장미의 아름다움만으로 장미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어도 행복하다.  자기 자신의 행복이 아닌 장미의 행복을 사랑하는 어린 왕자가 느낀 사랑은 패터슨이 연인에게 느끼는 사랑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아름다운 장미인 것만으로 어린 왕자의 사랑을 차지하였던 장미와 장미 자체인 것만으로 전부인 장미를 사랑하는 어린 왕자의 사랑. 패터슨과 연인의 사랑이 너무나 비현실적인데도 나는 오히려 내가 가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는데도 패터슨은 상심했지만, 화를 내지 않았다.

사실 모든 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없는 형편인 줄 알면서 값비싼 기타를 원하는 연인의 철없음도

그 철없음을 순순히 허락한 패터슨의 비현실성도

장미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어린 왕자의 순수함도

사랑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할 수 있다.     






정서적 교류와 공감이 없어도 자신의 맡은 역할에만 충실해도 굴러갈 수 있는 것이 남자와 여자가 만든 가정이 될 수 있다. 특별한 애정이 없어도 주어진 임무만 수행한다면 존재할 수 있는 아니 밖에서 볼 때 오히려 완벽하게 그럴듯해 보이기까지 하는 부부라는 울타리가 지속될 수도 있다. 비즈니스적인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게 하고 또 스스로 믿으며 살 수도 있다.          

서로 아무런 요구와 의무가 없는 단지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살아지는 관계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을까.  이해관계나 암묵적인 거래가 없어도 지속될 수 있는 관계는 어린 자식을 향한 조건 없는 부모의 사랑밖에 없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믿는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사랑이라 영화가 되고 동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욕망 없는 사랑. 자신의 기대와 의지와 무관한 사랑.
그저 존재만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비현실적인 꿈이 되고 있다. 
  

패터슨과 어린 왕자는 연인의 아름다움을 욕망하지 않는다. 연인이 가진 아름다움에 자신의 욕심과 선택, 의지, 믿음, 의미 그 어떤 것도 부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이란 그 자체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숭배할 줄 아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헤세, 사랑이 지나간 순간들 중에서). 아름다움을 숭배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욕망 속에 살면서 욕망 없이 아름다움을 숭배하며 살기를 욕망한다. 그래서 사랑이 어려운가. 


콘크리트 바닥 틈 사이를 뚫고 피는 한 송이 노란 민들레처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곳에서도 사랑은 피어나는 것이다.  나는 꿈꾼다. 패터슨과 어린 왕자가 행복했던 이유, 아름다움을 아름다움만으로 숭배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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