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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Apr 19. 2023

요술램프 지니와 요술지팡이

내 눈앞의 카랑코에



              

지난겨울, 동네에 작은 카페가 하나 새로 생겼다. 아직 입소문이 나지 않은 탓인지 손님이 없는 휑한 카페 안은  음악만이 겉도는 정적이 쌓이고 창밖에는 1월의 흰 눈이 쌓여있다. 창밖은 겨울인데 창안에는 계절을 건너뛴 노랑, 주황, 빨강의 꽃이 내가 주문한 달콤한 밀크티와 함께 나처럼 어색하게 앉아 있다. 시간과 공간이 잠깐 엉켜있는 듯한 느낌으로 엄동설한에 핀 꽃들을 보니 햇살만큼이나 마음이 따뜻해진다. 행복은 사진으로 남겨야만 인증받는 기억인 양 습관처럼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은 내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대신 기억해 준다. 사진을 찍었더니 핸드폰은 꽃이름까지 알려준다. 카랑코에. 처음 듣는 이름이다. 사람만큼이나 꽃들도 이름이 많고 제각각이다. 그리고 작은 화분 5개에 만원이라고 쇼핑몰도 안내한다. 무료배송까지 덤이다. 핸드폰은 매일 진화하는 것 같다. 모르는 게 없고 나보다 더 내가 필요한 것을 잘 안다. 이런 계절에  색색깔의 꽃들을 피운 한 송이 이천 원도 안 되는 꽃들이 사흘 뒤 집으로 왔다. 택배상자를 열어보니 공간이동이라도 했는지 온전하고 멀쩡히 그 먼 거리를 달려온 꽃들이 핫팩을 껴안고 생글생글 웃으며 생기가 있어 더 놀라웠다.  내가 원하는 그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마술처럼 내 눈앞에 있다. 내 손가락은 동화 속 마녀의 요술지팡이가 된 것 같다.             


   



택시를 탈 일이 거의 없는 단순한 생활을 하는 탓에 내 폰에는 흔한 모바일택시 앱이 깔려 있지 않았는데 일전에 급하게 볼일이 생겨 일을 처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잡을 수가 없어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길에서 앱을 깔고 개인정보를 넣고 인증을 받고 하는 일련의 일들이 번거로워 콜택시 전화번호를 검색해서 콜안내원과 통화를 하고 잠시 후 택시를 탈 수 있었다.  마음이 급할 때는 기계보다 사람이 통해야만 뭔가 안심이 되는 듯하다.  그게 더 빠르게도 느껴진다. 연배가 있던 기사님은 나 같은 경우가 드물었는지 앱사용의 편리성을 조언하시며 시대를 앞서가는 노련함이 나이 드신 분 같지 않았다. 덕분에 편리한 세상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많아져서 지루하지 않게 금방 집에 도착했다. 앱으로 택시를 탔으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이었다. 낯선 사람과의 짧은 대화였지만 왠지 마음이 훈훈해졌다. 핸드폰을 열었다. 택시앱을 내려받았다.  요술램프의 지니가 하나 더 늘었다. 언제든 터치만 하면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하며 나타날 지니들이 나의 분부를 기다리며 내가 소환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마트 배송에서부터 음식주문, 택시 타기 등 단순한 일상적인 생활이 타인과의 대면은 물론이거니와 전화로도 낯선 사람과의 접촉 없이 혼자서 손가락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코로나가 부채질한 것도 있지만 10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딴 세상으로 타임머신이라도 탄 기분이다.      

그런데 이런 손가락 마법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개인적으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과는 만남이나 관여가 불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필요에 의해서 만나야 하고 두 번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과는 최소한의 대면조차 하려고 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결국에는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는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필요한 사람과만 관계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흑백관계가 사는 것을 무미건조하게 만들고 있다. 클릭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나 또한 누군가의 클릭으로 움직여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카페에서 본 카랑코에가 내 눈앞에 왔던 날, 문득 예전에 중국음식을 주문하려고 중국집에 전화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나와 식당주인은 자신의 필요만을 말하지 않고 서로가 원하는 것을 물었다. 전화기 너머 주인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온 식당의 분위기와 그에 어울리는 자장면의 맛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음식을 기다렸다. 내가 택시앱을 이용하는 것이 번거로웠던 것처럼 이제는 이런 전화를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간편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요술램프 지니는 빠르고 편리하다. 그리고 편리할수록 지니 뒤에서 지니를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을 잊게 된다. 그들은 보이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내 눈앞의 카랑코에.  요술램프 지니 뒤의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수많은 누군가들의 손을 거쳐 내게 도착한 내 앞의 카랑코에만 그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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