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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리 Sep 11. 2020

저자의 탄생 - 작가님, 어디 계세요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14

"혹시 투고 원고는 출간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며칠 전 장강명 작가님이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을 쓰면서 취재차 전화를 한 참이었다. 나는 등에서 약간의 땀이 나는 걸 느꼈다.


"아, 그러니까 작가님... 제가 그때 작가님과 처음 뵈었을 때보다 경력이 많아져서요... "


정말 뜬금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투고 원고를 물었는데, 경력이라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경력 5년차 이후로 투고 원고함을 열어본 적이 없어요. 대부분 편집부의 막내들이 도맡아서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기획회의에 올릴 만한 걸 가져오기도 하는데요. 저는 투고 원고를 보지 않습니다."


말하면서도 삐질 땀이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책을 쓰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함이 묻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실제 책을 만드는 작업과 동시에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찾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쁜 일상이니까.


전 직장에서는 편집부 내에서 고충 안건으로 투고 원고함 관리가 나온 적도 있었다. 규모가 있는 종합출판사이다 보니 보통 한 달에 300건이 넘는 투고 원고가 도착했고, 일일이 열고 확인하고 검토하고 답신을 보내는 데만 걸리는 시간이 수일이었다. 한 명이 맡기에는 업무 마비가 올 수밖에 없는데, 부서별 막내가 3개월 단위로 돌아가면서 진행하는 시스템을 변경할 수 없느냐, 투고 원고를 아예 받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나는 왜 안 되겠는가의 입장이었다. 그 회사에 재직하는 5년여 시간 동안 그 수많은 원고 중에서 책으로 출간된 것은 2, 3건에 불과했으니. 들인 공에 비해 출간할 만한 원고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여겨졌다(물론  상황은 출판사마다 다르다. 책을 내야  원고가 2년치씩 쌓여 있는 부서는 투고 원고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고, 원고가 없는 팀은 투고 원고(완성된 원고를 의미한다)  바로 작업이 가능한 책을 찾아 출간했다. 새로 시작하는 출판사들은  날개나 판권에 주로 '여러분들의 원고를 기다립니다'라고 광고도 한다).


그럼 편집자는 대체 작가를 어디서 찾는가?

브런치? 정답.

SNS? 정답.

그리고 또?



편집자가 보는 모든 곳에 저자가 있다. 나라는 편집자의 눈이 머무는 곳을 보자면 뉴스 기사, 각종 매체의 화제가 된 인터뷰, 지인들이 공유해주는 이야기들, 유튜브, 블로그, 뉴스레터, 팟캐스트, 방송 프로그램 그리고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몇 달 전, 상사님께서 메신저로 링크를 하나 주셨다. 이 분 흥미로운데 어때요, 하며.


https://news.joins.com/article/23818825

이 배경은 이렇다.

2019년 12월부터 나는 주식 시장에 발을 디뎠다. 제로 금리 시대에 예적금보다 좀 더 수익률이 높은 주식에 눈을 돌린 것이다. 그런 나의 욕구는 대중의 흐름 속에 있었고 점심시간마다 주식 이야기를 종종 동료들 앞에서 나누었다. 아주 초보적인 지식이라도 새롭게 알게 된 걸 이야기하는 게 재밌었다.

그런 나니까 상사님이 이런 기사를 던져준 것이다( 팀이라면 평소에 취향과 관심사를 자주 이야기하면 좋다. 서로 뭔가를 물어다주는 관계가 되어보자).


인터뷰는 매우 흥미로웠다.


"재미있어요.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이미 늦은 연락일 수 있었다. 논문은 발표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코로나 시대에 주식시장 호황과 맞물려 논문 열람 조회수가 치솟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기사로 날 정도면 어디선가 연락이 갔어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확인은 필수.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로 연락을 할 수도 있었지만, 기사가 이미 난 예비 저자의 경우 기자님에게 메일을 드려 용건을 밝히면, 취재원의 이메일 주소는 편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그렇게 기사를 본 지 30분 만에 김수현 님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냈다. 다음은?


출간 제안 메일을 쓴다. 나는 어느 회사에서 어떤 책을 만들고 있는 편집자 000이라고 하며 작가님의 기사와 논문을 읽고 어떤 부분이 가장 통쾌했고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 화제성과 출간 의의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판단에 이렇게 메일을 드린다... 이미 출간 제의를 받으셨을 수도 있겠지만 혹시 몰라 연락을 드린다고.


연애 편지를 쓰듯,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쓴다. 소중한 인연이 될 수 있는 첫 시작이니까.


메일 발송.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두근거림을 누르고 회신을 기다리면 된다.


다음 날 출근을 하니 작가님의 메일이 도착해 있다. 빠르게 다음 주에 한 번 뵈면 좋겠다고.

이렇게 서두르시는 걸 보니 정말 다른 출판사들과 미팅을 하신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을 느끼며 미팅 약속을 잡는다.


처음 만나는 작가님과의 미팅, 특히 출간 제안 미팅은 편집자로서는 긴장될 수밖에 없다. 반드시 다음 약속을 받아내야 하는, 상대의 마음에 한눈에 들어야 하는 매력(일을 잘하는 사람인가, 내 원고를 맡겨도 되겠는가, 무엇보다 잘 모르는 세계에 믿고 의지할 만한 안내자인가)을 보여야 한다. 담당편집자인 나와 일을 하면 어떤 부분에서 더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이야기하고, 아마도 잘 모를 우리 출판사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리고, 작가님의 원고를 보고 어떤 책으로 만들 수 있을지 상상했는지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려서 제안을 한다.


실제로 마주 앉은 작가님은 무척 겸손하고 다정한 인상이었다. 많은 출판사들의 미팅 기회를 갖고 만나고 있으며 편집자에게 그리고 출판사에게 궁금한 부분도 꼼꼼히 확인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논문을 다 읽었는데, 단행본으로 나오게 되면 책을 살까요? 같은 핵심적인 부분까지도. 1시간 정도의 미팅이었는데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 두고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함께 책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리 쉽게 짐작하지 않았다. 그 순간의 대화에 집중했고 알차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 기억밖에 없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 다음 출판사와 진행하기로 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정중한 거절 메일이 있었다. 그 메일조차도 단정하면서도 마음이 쓰인 부분이 그대로 읽혀, 거절 당한 아쉬움을 지웠다. 네, 작가님. 이번에는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도모할게요. 진행하면서 혹시라도 제가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있다면 연락주세요! 라고 회신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참 단순하다. 아무도 모를 때 누군가를(원석을) 발견한 기쁨이 가장 크다. 내가 공을 들여서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여 나에게로 왔을때, 그 희열은 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니까 나는 예비 작가를 꿈꾸는 분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브런치 먼저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그 이유는 꾸준하게 어떤 글을 쓸지 보여달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매력적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출퇴근길에도, 걸으면서도 기획거리를 찾는 편집자의 눈에 띄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단 보여주세요. 계속해주세요. 그 말의 다른 버전이 어디에든 써보라는 말일 뿐이다.


김수현 작가님에게 출간 제의 거절을 당했지만, 그간 거절이 한두 번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처음 만난 자리에서 실없는 이야기를 해버려 아웃을 당한 적도 있고(이 날은 미팅 후에 망했네... 느낌이 왔다. 면접을 망친 기분과 거의 흡사하다), 처음 출판사와 미팅을 하며 정말 면접을 보는 것과 같은 긴장감으로 덜덜 떠는 작가님도 만났다(이 분과의 작업은 책이 성공리에 출간되었으며 지금 보아도 뿌듯한 책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어디로 펼쳐질지 모르는 가능성을 앉은 자리에서 점치며 인연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탐색을 한다. 머릿속의 그 무엇을 잘 구현해낼 수 있는 한 권의 실물 책을 만들기 위해.


마무리하며 제안이 통한 기쁜 기록을 나누고 싶다.

브런치 화제의 글, 김얀 작가님의 <대부호 프로젝트>(가제, https://brunch.co.kr/@babamba2020)는 수많은 출판사들을 제치고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는 사실. 원고 1화를 읽고 기획안을 쓰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단숨에 완성되었다(편집자가  맞는 원고를 만나면 이렇다.   며칠을 고민하지 않아도 날아가듯 저절로 써지는 느낌!). 


첫 책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을 읽고 난 뒤 작가님의 매력에 빠지고 그 뒤로 트위터로 늘 지켜보았다. 작가님이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을 때 '이거다!'라는 느낌을 받았고 출간 제안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창 작업 중이니 머지 않아 책으로 만날 수 있을 거란 귀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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