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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리 Sep 22. 2020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과 마주칠 확률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15

가끔 기획거리를 찾아 시장 조사차 서점에 들러 한 권, 한 권 살펴본다. 책들은 매대에, 서가에, 창고에 여기저기 빽빽이 쌓여 있다. 이 책들은 다 어디서 온 걸까. 나와 같은 편집자의 손을 거쳐, 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의 노고에 빌어 이렇게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책들.

솔직히 이렇게 많은 책들 사이에 굳이 또 책을 만들어 넣어야 할까, 어지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주변을 둘러본다. 매대를 살피는 중에 어떤 책을 구입하러 집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독자 파일링하며 머릿속에 그려 넣는다(이렇게 적으면 참 프로 같지만, 다만 연령대와 성별 정도 볼 뿐이다 ㅎㅎ). 아주 가끔 막 매대에 놓인 내가 만든 책을 유심히 살피는 독자가 있을 때면, 등 뒤에서 주문을 왼다(괜찮은 책이에요. 좋은 선택이에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주문의 효력은? ...반반이다.


로마 시내를 지나다 우연히 만난 서점. 어디를 가든 '책'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서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된다.


서점에서는 온라인 서점에서 봤던 표지들을 실물로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책을 쓰다듬고 펼쳐 보는 동안, 온라인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던 질감을 느끼며 물성을 확인하며 뒤늦게 감탄하는 책들도 있다. 이렇게 좋은 그림은 단편 소설마다 넣었는데 온라인에서는 왜 안 보여준 거지,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온라인에서 잘 몰랐던 반짝이는 박을 보며 추후 작업할 책의 후가공 샘플로 찜하기도 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보지 못했던 책들이 매대를 오래 지키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핸드폰 창이나 온라인 메인에 소개되는 책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당연한 현실을 깨닫는 순간.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그 작은 서점 앱 화면 속 자리싸움은 생각보다 치열하다. 옆으로 화면을 돌리지 않고 맨 위에서부터 화면을 끝까지 내릴 때 광고 배너 속 책 포함 예스24는 20권, 인터넷교보문고는 14권, 알라딘은 9권 정도 보인다. 2018년 기준(출처: <2019 출판연감>) 1년에 출간되는 책은 6만 3천여 종, 매일 170여 종의 책이 출간된다고 치면, 우리의 눈에 띄도록 ‘신간’이라고 주목을 받는 경쟁률이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오프라인 서점은 더더욱 공간의 한계로 인해, 선택적 주문을 넣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부디 동네서점에서 왜 찾는 책이 없는지 불평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내가 찾는 책이 없다고 “왜 이렇게 책이 없어요?”라고 묻기보다(이런 질문을 서점을 운영하는 분들이 많이 받는다고 한다. 아니 그럼 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책이 아니고 뭘까요), 원하는 책이 없다면 동네서점을 통해 주문하고 받는 매너 좋은 독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점 주인에게는 더없이 기억에 남을 손님이 될 기회이다.


보통 편집자 30인 이상이 고용된 출판사에서는 신간이 거의 이틀에 한 번 1종씩, 1년에 200종 이상의 책을 내기도 한다.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서점 매대에 ‘분야 신간’으로 표지를 드러내며 독자를 마주할 시간은? 거의 3~4일, 길면 일주일. 다시 새로 나온 다음 책들이 순서대로 서점에 도착하고 얼굴을 내밀고 누울 준비를 마친 뒤 매대에 오른다.


그 사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책들은? 매대의 자리를 내어주고 서가에 책등을 보이며 꽂히는데, 그럴 때는 한두 권만 남기고 반품이 된다고 한다(출판업계는 서점에 ‘위탁 판매’를 한다. 가끔 동네 서점과 직거래를 하는 출판사들도 있지만 대부분 ‘총판’이라는 중간 물류업체를 거치고, 다시 소규모 서점으로 주문받은 책들이 이동한다. 그리고 안 팔리는 책은 다시 서점에서 중간 물류업체 창고로, 출판사 창고로 돌아온다. 이렇게 이동만 하다가 상하는 책들이 많고 재생할 수 없을 만큼 손상된 책은 파쇄된다... 흙흙). 물론 계속해서 독자들이 찾는 책은 옆 매대 ‘분야 스테디셀러’ 코너로 옮겨가 다시 얼굴을 보일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는 책은... 정말 용하고 기특하다.




출판사에서는 책이 나오자마자 런칭 이벤트 등 마케팅을 집중한다. 책이란 건 ‘신간’이라는 이슈가 그나마 언론에서도, 서점에서도 가장 주목받을 시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달 안에 독자들의 반응이 없으면 후속 마케팅을 잘 하지 못한다. 출판사에는 다음에 나올 책이 또 순서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런 업계의 속도와 다르게, 독자의 시간은 느긋이 흐른다. ‘초판 1쇄’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일반 독자들에게는 잘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책이 존재한다는 걸 알기까지, 평균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종종 이런 게 궁금하다.

나와 같은 동료 편집자들은 매일 아침 알라딘 서점에 들어가 메인 검색창 밑 <새로나온 책>을 눌러보는 게 습관이다. 아직 오프라인 서점에 깔리지 않은 책들도 목록화되는데, 신간 보도자료를 작성한 편집자들이 직접 혹은 담당 마케터가 서점별 신간 등록 담당자들에게 메일을 보내면 등록이 된다. 어제까지 없던 책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순간이다. 서점에 매번 못 가더라도 표지와 제목, 출판사 이름을 확인하며 편집자는 시장 동향 파악을 한다(고 하고 싶지만, 대부분 장바구니로 담기며 출판계의 ‘얼리어답터’, 책 구입 권수만으로 00시 00구의 상위 5% 안에 드는 독자가 된다. 초판 2천 부를 찍는 요즘, 편집자 인구수가 대략 그정도 아니냐는 이야기를 우리끼리 종종 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책이 없을까요


그런 업계 사람 말고, 책을 인지하고 구입하게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얼마일까. 나는 한 3개월~6개월쯤 걸리지 않을까 짐작한다. 정말 책에 관심이 많아 매주 신간을 분야 상관없이 두루 살피며 구입하고 읽는 독자를 상상해보자. 고르고 고른 책이 도착하고 읽는 데까지 빠르면 1주, 늦으면 2주. 그 책이 마음에 들어 자신의 sns 혹은 블로그, 서점 리뷰를 남기는 데 드는 시간이 1주. 그렇게 한 달은 순식간에 흐르고 그 포스팅 속 어떤 키워드에 유입되어, 뭔가 읽어보고자 하는 독자가 누군가의 추천을 발견하기까지의 시간. 혹은 팟캐스트, 유튜브를 통해, 지인을 통해 알게 되는 건 3개월도 빠른 건 아닐까?


독자의 입장에서는 책이 나온 지 1년 안이면 빠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연한 기회 속에서 마주하고, 마음에 쏙 들게 된 좋은 책은 얼마나 늦게 만났든 그 시기와 상관없이 좋은 책일 테니까. 책을 만드는 편집자, 책을 판매하는 출판사 입장에서 한두 달 안에 승부를 보아야 하는 게, 더 알리지 못하고 밀어주지 못하는 게 늘 아쉬운 부분이다.




가끔 책을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기운을 받고 싶으면 검색창에 이전에 작업한 책들의 이름을 넣어본다. 나온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최근에 읽어준 독자의 리뷰가 있다면 그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이렇게 매번 염탐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님들. 창작자뿐 아니라 편집자에게도 리뷰는 언제나 소중합니다). 여전히 어디에선가 팔리고 있고 독자를 만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뭐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한 것만 같아 기쁘다. 특히 마음을 흔들 만큼 좋은 리뷰라면, 그래 내가 책을 만드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지, 하며 셀프 토닥토닥을 만끽하기도 한다.


2020년 9월도 막바지로 흐르는 지금, 올해 나온 신간 중 마음에 드는 책을 몇 권 만났는지 머릿속을 헤집어본다. 좋은 책을 만나는 건 옆에 두고두고 지낼 소중한 친구를 만난 것만큼 든든한 일이다.


오늘도 그런 책을 만들고 있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지금을 함께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만들고 싶다.


누군가에게 반짝하는 영감을 주는 책을,

누군가에게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을,

누군가에게 다시 도전해볼 수 있는 희망을 주는 책을 만들고 싶다.


그런 소망으로 아직까지 책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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