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리 Apr 05. 2021

머리 말고 팔다리를 움직여 스텝을 밟아봐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33

문을 열자 최소한의 조명이 켜진 어두컴컴한 실내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귓가를 울리는 신나는 스윙재즈. 문을 하나 열었을 뿐인데 1920년대(?) 미국의 어느 재즈 바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다. 흐르는 음악의 리듬에 맞춰 자유자재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넘쳐나는 흥이 나의 온몸으로 넘어와 발끝까지 짜릿하게 흘렀다. 그렇게 스물여덟, 스물아홉의 나는 스윙댄스에 빠져들었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웃음이 나는 즐거운 스윙 댄스


스윙동호회의 수업은 주로 주말에 정기적으로 열리는데 첫 수업부터 신세계였다. 동호회의 시범 공연부터 박수와 탄성이 나왔다. 나도 저렇게 음악에 맞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혼자 있을 때도 흥에 겨워 몸을 흔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나였다. 그런 우려와 달리, 수업은 어색할 새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선생님들의 안내로 팔로워(주로 여성)가 안쪽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니, 바깥쪽으로 리더(주로 남성)들이 둥글게 섰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한 동작을 설명하며 보여주면 파트너와 함께 따라했다. “파트너 체인지”라는 선생님의 외침이 들리면 서로 공손히 인사를 했고 리더가 오른쪽 방향으로 이동했다.


짧게는 10초 길게는 1분 정도로, 파트너는 수업 시간 내내 계속 바뀌었다. 낯설었던 얼굴이 아는 얼굴이 되고, 친해지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회에 나온 뒤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아는 사이’가 되는 건 큰 기쁨이었다. 댄스장 바깥에서 시달린 ‘말’이라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세계에서는 불필요했고 눈빛 하나로 그저 춤을 같이 추면 그만이었다. 스텝을 밟다 보면 한 곡의 안무를 다 배우게 되었고 동호회 사람들과 정규 공연을 한 번 마치고 나면 뿌듯함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평일에는 ‘제너럴(실력이나 동호회 소속과 상관없이 누구나 입장료를 내고 입장 가능한 댄스파티)’이 열리는 바를 찾아 홍대로, 강남으로 열심히 달려갔다. 처음 본 사람들과 손을 잡고 춤을 출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무엇보다 퇴근 전까지 받았던 스트레스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뭐가 그렇게 진지했느냐고, 해결되지 않은 일은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지금은 스텝에 집중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나의 일과 관계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따라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지 보는 것도 신기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가 전부는 아니라는 걸, 그 당연한 걸 인정하고 나니 혼자 끌어안고 깔려 죽을 것만 같았던 문제들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스스로 쪼그라들었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하면 신기해하고 추켜세우는 사람들, 특히 정적인 출판인들과 달리 에너지가 폭발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신선했다. 한없이 유쾌한 사람들 앞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땀이 나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다 보면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12시 종이 울리면 화들짝 놀라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 이랬을까. 몸을 움직이는 게 이토록 재밌을 줄이야. 웨이브가 되지 않아도 되는 춤이어서, 파트너의 리드에 맞춰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맡겨도 되는 춤이어서 더 좋았다. 하루 종일 굳어 있는 몸과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는 시간이었다.



직장을 옮기고 일산으로 이사를   스윙이랑 점차 멀어졌다. 새로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고양시에는 유명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고양체육관 수영장. 일산으로 이사를 했다, 어깨  허리가 아프니 운동을 해야겠다 말하면 주변에서 너도나도 “? 고양체육관 수영장이  유명한데 가봐라고 추천했다. 수영이라면 물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생님의 가르침에 보답하지 못한 전력이 있었다. 이번에는   있을까, 살부터 빼고 가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고민 중에 직장 동료가 일단 물속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는 말에 마음이 동해 냉큼 등록을 마쳤다.


광활한 레인이 보이는가. 여기가 고양체육관 수영장이다.


드디어 첫 수업 날. 어린이풀에서 어색하게 무릎을 적시고 있던 사람들이 쭈뼛쭈뼛 선생님 앞으로 다가왔다. 일단 한 바퀴 물속을 걷고 오라는 말에 양팔로 물을 괜히 휘저으며 앞으로 걷고 있자니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선생님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고 킥판을 이용해 첨벙첨벙 발차기를 배웠던 날, 음파음파 호흡을 배우고 킥판 없이 물속을 나아갔던 날, 일반 풀로 이동해 50미터를 마주한 날, 평영 발차기에 좌절하며 직장 동료이자 수영 선배에게 회의실에서 자세 교정을 받았던 날, 어느새 접영까지 배우고 오리발을 처음 신고 신나서 질주하던 날, 무엇보다 수영장 바깥의 세상과 완벽하게 끊어진 채 물속의 고요를 감각하던 날들…….


하루 종일 일을 해도 좀처럼 쌓여 있는 일이 진행이 되지 않아 기력 없이 도착한 날에는 좀 더 힘차게 발차기에 집중했고 물속에서 나오면 탈탈 털린 스트레스에 마음이 후련했다. 조금씩 하다 보면 수영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늘어가듯이,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처음 해본 동작들이 어느새 자동으로 연결되듯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리듬을 마침내 찾아냈듯이 회사의 일도 조직에서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하지 않았던 일이 매일 그냥 하다 보면 길이 보인다는 것. 다른 사람들의 요령이 나에게 꼭 맞는 건 아니라는 것. 고민하고 노력하다 보면 내게 맞는 일의 리듬을 익힐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과 언제든지 연결되어 있는 상태 자체가 적잖은 스트레스였다는 것. 하루에 두 시간 정도 모든 연결이 끊어진 채 물속에 있는 시간은 지금 여기 나에게 집중하기 위한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코로나 이후 수영장을 못 간 지 1년이 넘었다. 날이 풀리면서 파란 하늘을 볼 때마다 수영장의 물빛을 떠올린다. 체육관에서 만난 친구들과 매일 저녁 만나 줄 지어 라인을 돌며 수영하던 즐거운 시간이 무척 그립다.)


회사 안에서 해내야만 하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작은 것에도 예민해지기 쉽다. 점점 회사 밖의 나, 일로 설명되지 않는 나를 상상하기 어려워진다. 계속해서 회사를 잘 다니기 위한 에너지는 누가 쥐여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주로 바깥에서 몸을 움직이며 길어온다. 그 기운을 나의 동료들에게 상사에게 나눠준다.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전혀 상관없는 딴짓을 찾아보시길. 그중 몸을 움직이는 건 마음까지도 환기가 되니 일석이조다. 딴짓의 즐거움은 촉촉한 단비처럼 나의 본업에 더 집중하고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그 덕분에 나는 한 시절들을 무사히 넘어왔다.

작가의 이전글 이직의 기술 - 꿈과 희망은 없고 다만 후회하지 않도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