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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리 Apr 20. 2021

잊고 있던 나라는 조각을 찾아서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35

“지은 씨,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나요?”     


휴가를 내고 쉬고 있던 차에 페이스북 메신저 알림이 울렸다. 메시지 발신자의 이름을 읽다가… 누구지, 싶어 잠시 멈칫했다가 다행히 기억이 났다. 첫 직장에서 국내 저자로 첫 인연을 맺은 박성진 선생님이었다. 오랜만에 산문집을 냈는데 첫 책을 작업한 편집자인 내가 떠올랐다고, 다정한 안부를 건네는 선생님. 평일 오후의 메시지 몇 줄에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국내 저자로 처음 만난 선생님에게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의 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니, 안심이 된다.


머릿속 어딘가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기억의 조각을 모아 그때의 나를 떠올려본다. 어느 날, 편집장님이 나를 불러 편집장실로 들어갔던 기억, 쌓여 있던 책들 사이에서 잡지였던가 스크랩북이었던가를 건네받은 기억, 아마도 퇴사를 하기 전인 편집장님의 업무를 인수인계 받았던 것 같다. 건축잡지 편집장 출신이었던 선생님은 어딘가 어리숙했을 나를 알아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작업 기간 내내 충분히 존중하며, 책을 내기 위한 과정들을 많이 도와주셨던 선생님. 막 3년 차가 된 내가 선생님과 어떻게 소통을 하며 책 작업을 진행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좋은 소식이 있을 때마다 먼저 인사를 해주시는 선생님을 보면, 10년도 더 전의 내가 기특하기만 하다(가장 뚜렷이 기억하는 건 선생님과 책이 나온 기념으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던 거다. 책이 나오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와인 잔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때 지은 씨가 김미화 기획안 썼던 거 기억 나?”     


풉, 커피를 뿜을 뻔했다. 아… 그걸 언니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그로부터 며칠 뒤 전 직장 동료이자 퇴사 동료인 언니 둘과 함께 원주로 나들이를 나선 참이었다. 유명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다가 또 어쩌다 이야기는 일로 흐르고 우리는 눈을 반짝거리던 중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일 얘기라니, 그런데 또 서로 신나하는 분위기라니 우리도 참 우리다, 하며 깔깔 웃고 있을 때, K언니 입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질문.


“기획 스터디를 하고 있었나, 아무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 참석했던 적이 있는데 지은 씨 기획안 보고 너무 놀랐던 거야. 차례를 짜왔는데 이렇게 상세하게 써야 하는 거구나, 충격을 받았어.”


기억이…… 난다. 안 날 수가 없다. 인생의 두 번째 국내 기획안이었을 거다. 이명박 대통령 정권이 한창일 무렵, 대학교 시절부터 내내 읽어온 한겨레신문을 보며 김어준으로 첫 기획안을 썼고, 두 번째 기획안이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주목받던 개그우먼 김미화였다. 아마도 출판학교 동기들과 기획안을 쓰고 피드백을 주는 모임을 했던가…… 정말 난감한 건 그런 모임을 했던 기억 자체가 없다(이쯤 되면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회사에서도 기획안을 통과시켰지만 김미화 님께 어떻게 전해줄 방법이 없어서 나의 문서함 속에서 고이 잠들었던 그 기획안을 언니가, 언니가 봤다니. 게다가 생생하게 기억을 해주다니 너무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 나도 언니와의 첫 만남이 기억난다. 호프집이었고(나는 왜 술자리로 기억하는가) 나는 당시 6년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다. 출판학교 동기 영수 오빠가 출판계의 또래 모임 자리를 만든 그날, 자리를 파하면서 누군가 “지은 씨 무슨 일 있어요?” 라고 묻는 말에 길거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던 기억……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전부다. 물론 같은 날은 아니었겠지만, 정말 기억은 사람마다 이토록 다르게 적힌다.


“아니, 우리 셋 중에 나중에 창업을 하면 가장 먼저 할 사람이 지은 씨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럴 일 없다고 생각한 우리 둘이 벌써 창업을 하고 지은 씨는 이렇게 회사를 잘 다니고 있네. (웃음) 지은 씨, 꼭 더 높이 올라가요. 끝까지 올라가봐요.”

  

언제나 나를 ‘똘똘이 스머프’ ‘친화력 대마왕’으로 치켜세워주는 첫 직장 동료 S언니가 밥을 먹다 말했다. 회사가 가까운 언니와 종종 평일 점심을 함께 한다. 창업 후 5년이라는 시간을 어엿한 대표로 이끌어가고 있는 언니는 입만 열면 나를 칭찬하기 바쁘다. 언니 제가 정말 신입 때부터 창업을 목표로 하긴 했는데요, 그게 마흔이라는 나이를 보면서 했던 말인데, 그러니까 내년이면 마흔이고…… 그래도 우리는 만으로 마흔 따질 수 있으니까 아직 시간이 2년은 남은 거네요…….


2년차 편집자로, 편집부의 가장 오래된 사람으로 남아 있을 때 S언니와 H언니가 출근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10년 언저리 경력의 선배들 자리에 3~4년차 편집자들을 뽑아 앉혔던 회사. 그 안에서 막내이면서 이 조직의 고참이었던 나는 언니들과 어떤 시간을 보냈던가. 월급 밀리는 회사 욕도 하고 쉬는 시간이면 집에 있는 색색의 매니큐어를 다 가져와 서로 새로운 색을 발라보고 수다를 떨었다. 어느새 그 이후로 12년이 흐르고 우리는 서로의 퇴사와 이직을 축하했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두 언니는 모두 창업을 했다. 책을 만드는 일이 좋아서, 조직에서 벗어나 해보자는 용기를 내기까지 그 고심의 시간은 내 머릿속마냥 훤히 보인다.


책을 만들다 뭔가 내 맘처럼 일이 되지 않을 때, 사람 관계로 스트레스 받을 때 나는 언제든지 언니들에게 카톡을 한다. 오늘 볼까요. 세 번 중 두 번은 시간이 나고 단숨에 달려온다. 이제는 안다. 보고 싶다고 할 때 볼 수 있는 건 시간이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라는 걸.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 괜찮은 사람이다, 파이팅 해라.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숨이 쉬어져.

고맙다. 옆에 있어줘서.”


정주행 중이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박동훈의 대사가 흘러나온다. 맞다. 잊고 있던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아직까지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나 보다. 시간이 누적되어 나라는 사람은 여기까지 왔는데, 내 등 뒤에 남은 발자국을 오래 지켜봐주는 사람들. 매일 보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향한 레이더를 장착하고 언제든지 달려와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정서적 지지대를 기꺼이 자처하는 사람들.

고맙습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게요.

여기서 곁을 지키고 서 있을 테니까 언제든 필요할 때 불러줘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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