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리 Apr 26. 2021

점심시간을 맞이하는 직장인의 자세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36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과 사이에 하나의 선을 긋자면 점심시간이지 않을까? 15년차 직장인으로서 그간 못해도 3 번이 넘는 점심시간을 보냈다.  시간 동안 나와  주변 사람들의 행동 양태를 관찰한 결과, 직장인이 점심시간을 대하는 방식에는 대략  가지로 분류할  있을  같다.


1. 생존형 :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먹는 유형. 오후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에너지를 얻는 활동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 메뉴 선정에 의미를 두지 않으며 보통 빠르게 식사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2. 자기계발형 : 자투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점심시간을 이용한다. 주로 운동을 가거나 독서모임, 어학 스터디를 하기도 한다. 특히 각종 디스크에 시달리는 편집자들은 대체로 필라테스나 요가로 자신의 몸을 돌보는 데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소에도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의 선택으로 1일 1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잘 보여주는 예다.


3. 혼자 있고 싶어 형 : 날 좀 내버려둘래, 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혼밥을 즐기는 사람. 업무가 주로 과중할 때 점심시간만큼은 일에서 벗어나 있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택한다. 혹은 일주일에 한 번은 이 시간을 자발적으로 택하기도 한다. 할 말을 찾지 않아도 되는 나와의 오붓한 시간은 에너지를 모으는 시간이 된다.


4. 출근하는 미식가 형 : 먹는 것에 존재의 의의를 두는 편. 맛있는 점심을 먹어야만 오늘 하루를 잘 산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 동네 맛집을 알려면 그 지역에 사는 로컬보다 그 지역의 직장인 SNS를 찾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


이중 나는 어떤 유형인가. 아침에 눈을 뜨고 회사에 가기 싫을 때면 자연스럽게 ‘오늘 뭐 먹을까’로 나를 달래고 회사가 있는 역 출구를 나가기 전까지 메뉴를 정해버리는 사람. 업무 스케줄을 보다가 다음 주에 고된 업무가 있다면 퐁당퐁당 점심 약속을 잡아두며 다음 주의 내가 잘 버틸 수 있도록 미리 기쁨을 준비해두는 사람. 수년간의 저자 미팅 등으로 합정, 망원 주변에 웬만한 맛집은 머릿속에 나라별(한식, 양식, 일식, 아시아식 등등) 리스트로 꿰고 있는 사람. 식당뿐 아니라 맛있는 커피가 있는 새로운 카페가 생기는 걸 점찍어두었다가 기회가 될 때면 방문해보는 사람.


점심 메뉴 중에서 특별히 선호하는 음식 분야는 없다. 보편적인 입맛과 식성으로 모든 메뉴에 열려 있는 . 다만 위가 튼튼한 편은 아니어서 튀김류의 기름진 음식은 가급적 횟수를 정해서 먹으려고 한다(연초에 텐동(튀김덮밥) 먹고 탈이 나서 며칠을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아찔하다). 회사가 있는 망원역 근처에는 프랜차이즈점보다 주인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맛집들이 많아서  행복한 고민을 하는 이다.


코로나가 일상이 되고 함께 식사를 하는  위험해진 까닭에 이전에 누렸던 점심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새삼 깨닫는다. 단순한 식사시간이 아니라, 업무 중간에  이야기 말고 동료들의 근황이라든지, 화제가 되고 있는 뉴스라든지, 내가 놓치고 있는 소식이나 동료의 소소한 삶의 변화  스몰토크를 하며   서로 이해할  있는 폭을 넓힐  있었던 기회였다.

신입 시절에는 편집부 선배들이 모두 대단해보였던 만큼, 점심시간에도 책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가 연예인 얘기만 하는 편집장님한테 남몰래 크게 실망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서로의 사생활을 캐지 않기 위해 제3의 주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특별히 재밌게 보지 않았어도 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면 화제의 드라마 줄거리 정도는 읊을 줄 아는 게 사회생활 매뉴얼 중 3항에는 들어가야 할 것이다.

말 나온 김에 사회생활 매뉴얼 중 점심시간과 관련된 조항을 하나 더 읊자면 상사와의 점심식사를 가능한 한 잦은 주기로 먹지 않되, 들키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전의 한 직장의 주간님은 자신이랑 식사를 하지 않는 부하직원들에 대해 괘씸함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나도 열심히 그를 피했는데, 생각해보면 1) 공통의 대화 소재가 없으니 일 얘기를 하기 일쑤고 2) 맛있는 걸 사주는 상사가 아니었으며(기사식당이 그의 주된 단골집이었다) 3) 점점 오래 일하면서 업무상 부딪히는 일들이 많으니 점심시간만이라도 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적다 보니 팀장이 된 나 또한 그러고 있지 않았나 잠시 벽 보고 반성을... 엄연히 법정 휴게시간인 점심시간까지 업무 진행 상황을 체크하거나 업무에 도움이 된답시고 하던 잔소리 같은 말들은 삼키고 지갑을 여는 게 최선이겠다.


요즘에는 주로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도시락을 먹는데 마치 나라는 기계에 기름칠 하는 것과 비슷한 삭막함, 무의식적으로 꾸역꾸역 입에 넣다가 숨이 턱턱 막힐 때가 많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아무  없이 도시락을 먹는  혼자 식사를 하기로 선택한 사람의 식사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코로나 단계가 하향될 때마다 부리나케 작가님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잘 지내셨느냐고, 조만간 맛있는 거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지 하며 빈 스케줄표를 채워나간다. 일과 이후의 저녁 미팅보다 점심 미팅은 한결 여유롭게 만날 수 있어 좋다(작가님도 직장 생활 중이라면 어쩔 수 없이 퇴근 시간 이후가 되지만). 이메일과 전화, 문자로는 전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서는 좀 더 세세하게 나눌 수 있다. 식사를 함께하는 건 서로가 원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우리도 모르게 조금 더 꾸미지 않은 상태의 자신을 보이며 친밀함을 조금 더 쌓는 순간이 된다.


출근을 하기 싫을 때마다 마법의 문장을 되뇌어보자.

오늘 무엇을 먹을까.


맛있는  앞에 앉기 위해 오전 업무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지. 점심을 여유롭게 먹고 들어오기 위해서는 오후의 일도 오전으로 조금 당겨서  필요도 있겠다. 먹는  앞에서는 얼마든지 부지런해져도 좋다고, 메뉴 후보를 떠올리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출근길이다.

작가의 이전글 잊고 있던 나라는 조각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