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리의 커피 타임
위기를 느꼈다. 회사와 집만 오가다가, 그러다 재택근무로 집에서도 일을 하고 있자니 일 생각이 쉽게 꺼지지 않았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대한 근심을 다 떠안고 자꾸만 미간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일은 생각에 생각을 더 할수록 없던 일까지 다 끄집어내 나를 숨 막히게 할 테니까. 이렇게 중독이 되어가고 일을 하지 않을 때의 자신을 상상할 수 없으면서 불행해지겠구나 싶었다. 끊임없이 직장으로, 내 책상으로, 일 앞으로 나를 끌고 가는 뇌의 회로에 새로운 길을 뚫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준구 씨와 산책할 때마다 이런저런 구상을 더하고 무조건 지지하는 준구씨의 응원을 받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처음 말을 꺼낸 건 알라딘 라이브 북토크 김민철 작가님 편을 진행하고 복귀하는 택시 안에서였다. 옆에 있던 예스 대리님에게 슬며시 꺼냈다.
“만약에 편집자가 책 나오고 나서 나와서 그 책 홍보하는 방송을 하면 어떨 거 같아요?”
평소에도 맞장구를 잘 쳐주는 예스 대리님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지난 시절의 <뫼비우스의 띠지>(유쾌하고 즐거운 출판계 대나무숲 방송이었다) 이야기도 하고, 좋다 좋다 손뼉도 쳐주더니, 자기는 떨려서 그런 데 못 나갈 거라고 제안도 받기 전에 먼저 거절했다(거절은 거절합니다 후후).
나는 예스 대리의 호응에 힘입어 뭉게뭉게 상상을 더해갔다. 녹음이야 뭐, 녹음기 있으니까 그걸로 녹음하고 편집하면 되지. 편집은 좀 어려울 수 있겠지만 해보면 되겠지(유튜브 영상 편집도 해보니 되더라고). 섭외는 일단 출판계의 고인물인 내 곁에 너무도 좋은 편집자들이 많으니 한 분씩 모셔보자. 그리고 화제가 되는 책의 편집자 분들은 직접 섭외 메일 쓰면 되는 거지(추천사며, 출간 제안이며 매일 쓰고 있는 게 섭외 메일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상상만으로도 너무 즐겁다. 나의 온 신경이 나를 괴롭히는 데로 향하다 움찔 놀라서는 뭔데, 뭔데, 뭐가 이렇게 재밌는 거야 하고 팟캐스트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가 할 방송은 본격 편집자 인터뷰 방송, 책 홍보 방송이야.
책 만드는 편집자가 가장 막막해지는 때가 언제인가.
마감을 끝내고, 인쇄까지 마치고 며칠의 제작일을 거쳐 짠- 책이 나온 바로 그때.
적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편집자와 저자가 끌어안고 있던, 세상에 없던 콘텐츠를 내보일 때.
이 책의 좋음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은데, 들어줄 사람 누구 없을까 찾고 싶어진다. 이제 바통을 넘겨받은 마케팅, 홍보 쪽은 바빠지지만 편집자에게 책에 대한 반응이 오기까지(혹은 느껴지기까지)는 수일이 걸린다.
책이 나오면 책을 쓴 작가님들을 불러주는 곳들은 많으니, 그 책을 만든 편집자를 초대해보자. 누구보다 그 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빠삭한 사람. 열 번은 읽었을 그 원고로부터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 책의 첫 시작부터 구상, 제작에 이르기까지 책의 내용부터 시작해 독자들도 때로는 저자들도 알 수 없는 메이킹 스토리의 세계를 얼마든지 이야기해줄 수 있을 테니까.
편집자의 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어떤 기획을 하고 어떤 판을 깔고 사람들을 섭외하고 조율하고 설득하는지 들을 때마다 놀란다. 피디나 카피라이터가 하는 일과 비슷하기도 하고, 늘 뭔가를 쓰고 있고 읽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편집자의 세계가 너무 좋다. 정답이 없는 세계. 일을 배우긴 하지만 각자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하는 세계여서 일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른 게 신기하고 궁금하다.
올초 잠깐 클럽하우스 붐이 일었을 때 편집자들의 방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다. 오늘 무슨 업무를 했는지, 늦은 저녁 시간에 때 아닌 업무 보고 같은 것을 해봤다. 모두 다른 회사를 다니면서 비슷한 일을 하지만 매번 다른 상황이 발생하고 그걸 헤쳐 나간 뒤에 책이 나온다. 다른 편집자들이 진행하고 있는 책은 왜 이렇게 재밌어 보이는 건지, 담당하고 있는 그 작가님은 어떤 사람인지, 표지는 누가 이렇게 찰떡으로 구현해낸 건지, 제목의 신은 편집자마다 하나씩 키우고 있는 건지…… 일 이야기뿐인데도 나는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본업에 치여 이런 구상을 맘속으로 간직만 하다가 맥주 한잔 하면서, 뉴스레터 콘텐츠로그를 쓰고 있는 해인님에게 첫 회 방송에서 나를 인터뷰해달라고 섭외 제안을 드렸다. 그 제안이 흐르고 흘러 둘이 같이 하는 채널 <두둠칫 스테이션>이 되었다. 한 주는 내가 진행하는 <에디터리의 커피 타임>이 올라오고 한 주는 해인님이 진행하는 <믹스테이프 픽션>이 올라온다. 혼자 하기에는 마감에 대한 긴장감도 떨어질 테고 2주에 한 번 올리는 것보다 매주 올라오는 게 구독자를 늘리는 데 틀림없이 도움이 될 거니까. 서로에게 시너지를 줄 수 있는 동료로 의기투합해버린 칠월 칠석의 밤, 이건 운명이었다.
8월 3일 첫 방송이 시작되고(매주 화요일 업로드됩니다) 주변에서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다. 조회수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10일 두 번째 방송은 편집본을 들을 때부터 너무 재밌었다. 소설을 매개로 한 K-pop 큐레이션이라니. 특히 이번 방송은 내가 최근에 작업한 소설 <최애, 타오르다>로 아이돌의 세계를 이야기하니 세세한 장면 하나하나가 이야기할 거리였다. 작품에 과몰입한 두 사람의 수다를 부디 많이 들어주세요(급 홍보).
즐겁자고 시작한 팟캐스트는 지금까지 무척 효과가 좋다. 일을 하다가 혈압이 급상승하는 순간이 왔을 때, 잠시 그룹웨어 채팅창을 내리고 팟캐스트 다음 출연자를 섭외하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오니 꽉 막혀 있던 머릿속에 공기가 돈다(이래서 흡연을 하는 건가...). 주말에는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시간에 편집을 한다. 편집 프로그램의 기능을 하나씩 알아가고 녹음할 때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숙지한다(마이크를 건드린다거나 말을 더듬으면 다시 한번 천천히 그 말을 반복해준다거나).
무엇보다 성과와 상관없이 순수하게 즐거울 수 있는 일이 생겨서 기쁘다. 이 팟캐스트를 매개로 아직 만나보지 못했던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이 되겠지. 멀리멀리 뻗어나가는 채널이 될 수 있도록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께 좋아요, 구독 요청드리며. 이만 총총.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81651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8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