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오래된 친구 경희가 있다. 송경희.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났고, 대학교 3학년에 10대 시절을 보낸 동네를 떠나오기 전까지 가장 마음을 털어놓고 지낸 친구. 마음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리워서 먹먹해지고 마는 친구.
취업을 해서 서울로 떠나오고 난 이후로는 이곳 생활에 적응하느라 나의 유년시절이 가득한 대전을 빠르게 잊었다. 아니 잊으려고 했다. 현실은 내가 모르는 것투성이에 까다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해야 했고, 익숙하면서도 느린 대전을 그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경희와 대학에서 이것저것 하느라 바빴던 나, 우리의 세계가 하나였다가 조금씩 각자의 세계로 갈라지는 동안 보고 싶은 마음도 잊은 채 지내다가 다시 얼굴을 마주하면 한없이 편하고 좋았다. 거친 사회생활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경희는 그대로였다. 언제나 호탕하게 잘 웃었고 같이 맛있는 걸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어딘가 마모되거나 변하지 않고 나의 경희로 있어주는 친구를 나는 계속 좋아했다. 경희가 한 병원에서 일하면서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서울로 이사를 하고 경희가 첫째를 낳았을 때 고양이 ‘하루’와 같이 살기 시작했고(그래서 경희의 첫째와 나의 고양이 하루가 동갑이다) 둘째 고양이 ‘하나’는 경희의 둘째보다 먼저 나에게 도착했고, 경희가 어엿한 엄마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직장을 계속 옮기며 적응하고 승진하고 결혼도 했다.
쉬는 시간이나 하교할 때 우리 사이에 무수히 건넸던 편지와 쪽지들처럼, 우리 각자의 시간은 접혀버린 종이의 자국처럼 어쩔 수 없는 여백을 만들어냈고 그 안에 존재하는 이야기는 서로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그저 둘 중 누군가가 먼저 “오랜만이야. 어떻게 지내?” 라는 카톡을 하면 그제야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의 친구를 떠올리고 인사와 안부, 사는 이야기를 잠깐씩 나누며, 애써 우리의 공백을 좁혀보았다.
경희는 어떤 친구였나. 반에서 인기가 있거나 존재감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 네다섯이 모여 있을 때는 그 안에서 항상 대장이었다.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둘째인 경희는 자신의 몫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편이었는데, 그 영향이었을까. 아무튼 첫째인 나에게 경희의 언니스러운 모습이 꽤나 매력적이었고 그런 경희가 좋았다.
우리 집도 부모님이 다 일을 나가셔서 비어 있긴 했지만, 우리 집보다 더 큰 경희네 집(생각해보니 그렇다. 경희네 집에 주로 모여 놀았던 게 자연스러운 이유가 그랬구나)에서 주로 놀았다. 배고프면 경희가 밥도 차려주고 했던 것 같다. 식당에서 일하시는 경희 어머님의 손맛으로 늘 맛있는 것들이 있는 집이었다. 모여서 별다른 걸 한 건 아니다. 재잘재잘 반에서 마음이 가는 남자애들 이야기나 연예인 이야기, 언니나 동생, 때로는 부모님에 대한 험담, 커서 뭐가 될 건지 떠들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반이 달라져서 교환일기를 썼다. 사춘기 시절에 무엇 때문인지 나도 알 수 없는 짜증이 올라올 때에 옆에서 서로의 마음을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는 친구였으니, 둘도 없이 참 소중했다.
경희와는 단둘이 서해 바다로 놀러간 적도 있다. 아마도 스무 살 여름이었을 것 같다. 매번 집 앞 버스를 타고 대전역 근처 시내를 나가 노래방을 가고 쇼핑을 하고 즉석 떡볶이를 먹던 중학교 시절을 지나, 유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침내 대전을 벗어났다. 아마도 행선지는 대천이었을 테고 배도 잠깐 타고 가까운 섬까지 가서 잔뜩 웃었던 장면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나란히 줄지어 선 나무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경희와 이렇게나 멀리,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더 멀리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그만큼 커버린 우리여서 많이 설렜고 경희와 함께 어디든 또 떠나고 싶었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 옆에는 갑천이 흘렀다. 제법 물살이 센 곳도 있었고 둑방 아래에 깊게 고여 있는 곳도 있어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물속에 발을 담그고 놀았다. 여름밤에는 주변 주민들이 모두 몰려나와 돗자리를 깔고 삼겹살을 열심히 구워댔는데, 담임선생님이 고기기름으로 천이 오염된다고 고기 굽지 말라는 공지를 내렸던 것도 기억이 난다. 갑천을 따라 쭉 걸으면 아파트 단지를 지나 엑스포 공원이 건너에 보였다.
왕복 한 시간 정도 되는 길을 나와 경희는 무수히 걸었다. 오늘도 부모님이 싸워서 짜증이 났어. 그럴 거면 왜 같이 사는 거야. 야 오늘은 담임이 나를 붙잡고 괜한 시비를 걸었어. 등등 속풀이를 하던 이야기에서 어느덧 자라 대학교를 간 나는 이른 아침에 경희를 불러내고 그날 볼 독일문학 시험에 준비한 답변을 외면서 걷기도 했다. 그게 갑천에서 함께 걸었던 추억 마지막쯤 되는데, 이후 시간이 훌쩍 지나 재작년에 그 길을 짧게 같이 걸었다. 이제는 사라진 엑스포 공원 앞에 어마어마하게 큰 신세계 백화점이 생겼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경희를 그 앞에서 만났다. 경희가 위암 항암치료를 막 끝내고 한 달이 지났다고 연락한 지, 또 한 달쯤이 지난 시점이었다.
경희와의 연락은 아주 오랜만이어도 언제나 어제 본 것 같았다. 편지를 받고 싶다고 해서 내가 만든 책과 함께 짧은 엽서나 편지를 보내면, 병원에서 일하면서 짬짬이 쓴 답장이 내게 도착했다. 그 편지를 받으면 다시 교복 입은 그때의 나로 잠시나마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경희는 그런 존재다. 눈 깜짝할 새에 시간여행을 하게 만드는 열쇠. 분명 그 시절이 힘들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이렇게 다 크고 보니 우리가 함께 보낸 그 시간만큼은 틀림없이 그립고 애틋하구나.
만나면 여긴 대전이라고 늘 맛있는 거 자기가 사주는 친구. 커피를 안 마셔서 잘 모르다가 내가 스타벅스를 간다는 걸 알고 난 뒤로 뜬금없이 스타벅스 커피 상품권만 자꾸 보내는 친구. 아직도 혼자 낯선 길을 가는 건 무서워서 나 보러 서울을 한 번도 오지 않은 친구.
그래도 매년 나는 경희 너랑 단둘이 가는 여행을 꿈꿔.
둘째 떼어놓고 오는 게 쉽지 않겠지만 올해 2023년에는 가자, 경희야.
언니 이제 운전도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