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헬프 미 시스터>
때론 소설이 한 편의 생생한 르포로 다가올 때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월급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모인 소설가 11명이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작품’을 썼다. 2023 9월에 출간된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가 바로 그 책이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경제적 위기를 간신히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후폭풍은 이제야 몰아치는 듯하다. 땀 흘려 번 한 달치의 월급은 ‘현금 채굴’이라는 말로 대체되며 그걸 원료로 더 큰 부를 일으키는 코인이나 주식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과 불안함이 많은 사람들을 폭락으로 이끌었다. 다들 돈 벌고 있는데 ‘현명한 선택은 투자자의 몫’이라고 교과서적으로 떠드는 소리에, 떨어진 노동의 가치와 싸우고 목표 설정을 잃은 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대꾸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손님이 줄어든 카페에서 망할 리 없는 삼각김밥 공장으로 일터를 옮긴 주인공이 등장하는 「순간접착제」(김의경), 15분씩 누수되는 시간들을 아파트 벤치에 앉아 가만히 견뎌야만 하는 학습지 방문교사의 일을 눈치챌 수밖에 없는, 이제는 학부모가 된 경진이 지키고 싶은 「밤의 벤치」(서유미), 직원들의 불만을 대표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해 설득하고자 노력하지만 그저 중간에 끼인 채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껌종이 같은 존재라고 체념하는 마음을 삼키는 「광합성 런치」(이서수),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국내 1위 여행사에서 희망퇴직 신청, 대기 발령, 권고사직 순으로 흩어져버린 사람들 속에 텅 빈 사무실을 지키는 「간장에 독」(장강명) 등등 다양한 현장으로 포착한 장면들은 마치 신문 1면에 등장할 법한 2023년 한국 사회의 단면 같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 더 가지라는 유튜브 속 외침 앞에서 삼각김밥을 우걱우걱 삼키고 다음 배달지를 향해 목숨을 걸고 아슬아슬 곡예를 펼쳐야 한다.
이 소설집을 읽고 더 남은 이야기를 자세히 읽고 싶어진다면 『헬프 미 시스터』(이서수)를 추천하고 싶다.
낡은 빌라 안에 삼대가 모여 사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월급을 받던 수경은 회식 자리에서 직장 동료가 벌인 범죄에 피해자가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만다. 그러고 나니 보이는 건 전업투자자인 남편 우재와 최근 미화 일을 그만둔 엄마 여숙, 2년 전 사기를 당해 집을 날린 아빠 천식, 그리고 여의치 않은 사정에 맡겨진 조카 둘.
생계를 위해 자차배송에 뛰어든 수경과 엄마 여숙, 그들을 이어 대리운전과 음식 배달을 하게 되는 우재와 천식까지… 어쩌다 보니 온 가족이 플랫폼 노동자가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한다.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우고 극복하기에는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없기에, 당장의 생계로 몰두하는 사람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삶을 견디게 해주는 가족이란 존재가 이렇게나 소중하다. 밖에서 받은 상처를 함께 안아주고, 눈물 대신 웃음을 터뜨리며 서로를 다독이고, 스스로 힘을 내서 다시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도록 묵묵히 응원해주는 사람들. 어디에서도 강자의 입장이 되지 못하지만, 내게 소중한 사람 앞에서는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는 사람들.
“《헬프 미 시스터》에도 상처를 품고 있는 자들이 한가득 등장한다. 그들은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쉬운 방법을 택하는 대신 서로를 껴안고 구원한다. 그렇게 볕들 날 없는 일상에서도 기어이 윤슬 한 조각을 찾아낸다.”는 박상영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이 소설 안에는 바로 옆에 사는 이웃과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끔은 외식을 하러 가는지 시끌시끌하게 지나치는 사람들, 함께 있을 때 맘껏 크게 웃는 사람들. 2023년 빠르게 변하느라 뒤처진 누군가를 돌아볼 새도 없이 이 흐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쓰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이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해보기로 결심하는, 그게 바로 기적이라고 덧붙여주는 작가의 시선이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