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간호사가 당신에게 전하는 평범한 우리들 이야기.
호스피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보면 슬픈 순간도 많지만, 웃긴 순간도 참 많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한 환자분을 소개하고 싶다. 이 환자분은 치매 증상이 있어서 자주 잊으시고, 남들에게 관심도 많으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병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다른 환자나 간호사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 병실을 돌던 중 그 환자분이 침대에서 한쪽 발을 내리고 계신 걸 발견했다. 침상 생활을 오래 해서 거동이 어려운 분이지만, 치매로 인해 자신의 상태를 자주 잊으신다.
"어..! 그러시면 안 돼요. 다리 올리세요."
그러자 환자분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촉새 같은 게, 조금만 더 늦게 오지 와 이리 빨리 왔노."
나는 웃음을 참으며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환자분, 넘어져서 뼈라도 부러지면 큰일 나요."
"뼈가 그렇게 쉽게 부러지나? 내 아직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렇죠, 알죠… 그래도 위험해요."
환자분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람들 없제? 침대 이거 좀 내려봐라. 꿈쩍도 안 한다."
"안 돼요, 할머니. 침대에서 내려와서 넘어지시면 저 혼나요."
"아이다, 혼 안 낸다. 살짝만 내려봐라."
"어디 가시려고요?"
"집에. 할아버지 밥 해줘야지."
나는 잠시 멈칫했다.
"할머니, 집에 따님 있잖아요. 따님이 밥해 주시잖아요. 그러지 말고, 할아버지랑 영상통화해요."
"아이고, 영감은 내가 필요하다니까!"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들어 영상통화를 연결했다.
영상통화 연결 중 -
화면에 할아버지가 나타나자, 할머니는 소녀가 되었다.
"영감, 잘 있었는교? 아픈 데는 없고요? 내는 잘 있지요…."
할머니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그 눈빛, 볼이 발그레 물드는 모습. 순간, 환자분의 젊은 날 소녀 같은 모습이 겹쳐 보였다.
창가로 봄바람이 병실 안으로 잔잔히 불어오고, 따스한 오후 햇살이 병실을 감쌌다. 주변의 소음마저도 부드럽게 퍼지며, 이 장면을 내 기억에 선명히 새겼다.
어른이 되면 감정에 무뎌진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삶의 크고 작은 위기를 이전보다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첫 설렘과 감동에도 무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통화 속에서 소녀처럼 웃는 환자분을 보니 내 마음도 함께 살랑거린다.
아, 봄이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이곳, 호스피스 병원에도 봄과 설렘은 존재한다.
그것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놓치지 말자.
사는 것에 바쁘고, 일에 치이고, 자신에게 실망하며 하루를 보내는 당신.
당신 안에는 작은 것에도 울고 웃으며 느끼고 충만했던 아이가 있다.
속상하고 힘든 하루, 그 아이에게 사탕과 손수건을 건네줄 어른이 바로 당신이다.
살자.
잘 살아보자.
그러니, 오늘 하루도 온전히 살아보자. 사랑하며,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