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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 우리를 잇는 운명"

호스피스 간호사가 전하는 운명처럼 이어진 사랑이야기.

by 별빛간호사

붉은 실, 인연을 믿으세요?

나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오늘은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은 전생부터 이어진 인연이 있다고 말한다. 새끼손가락에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묶여,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결국 만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어느 날, 한 환자분이 병원에 오셨다. 치매 증상이 있어 기억을 자주 잃고, 밤낮없이 소리를 지르며 치료진을 힘들게 하시는 분이었다.

보호자인 부인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자주 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할아버지를 달래드리며, 휠체어를 태워 산책을 하거나 작은 이벤트를 만들며 하루하루를 함께 보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할아버지의 러브스토리였다.

“난 사실 장가가기 싫었어. 어머니가 하도 성화라 억지로 갔지. 그땐 다 그런 시절이었어.”

“그러셨구나.”

“색시 얼굴도 나는 결혼식 날 처음 봤어.”

“그리고요?”

“얼굴이 조만한 게 하얗고, 손도 작고… 참 곱더라고.”

“그때 한눈에 반하셨구나?”

할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보고 싶으세요?”

“말이라고… 할멈 집에 있을 텐데, 요즘 통 병원에 안 오네… 애들 밥 해주고 학교 보내려면 힘들어.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있는데 나으면 돈 벌어서 새끼들 학교도 보내고 해야지…”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그는 여전히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책임감이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꿈속에서라도 할머니를 찾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주무시다 혼잣말로 “할멈… 할멈…” 하셨다. 또 어느 날은 “나 새 장가간다, 옷 좀 달라.” 하시며 옷을 찾기도 했다. 그러다 또 다른 날은 “가야제… 같이 가야제… 할멈이 아픈디… 아파…”라며 불안해하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녀분께 전화를 걸어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보호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그걸 어떻게 아시고… 사실 어머니께서 어제 돌아가셨어요.” “…네?” “아버지께는 말을 안 하려 해요. 충격받으실 것 같아서…”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서로의 상황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것, 그것이 부부의 연이 아닐까.

나는 할아버지의 침대 옆에 할머니의 사진을 두었다. 그날 이후로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사진을 닦으셨다. 사진을 쓰다듬고,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맞추시기도 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내 인연에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리들의 붉은 실은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당신은 인연을 믿는기?
"당신의 붉은 실 끝에는 누가 기다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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