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원 간호사가 전하는 우리의 이야기.
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입니다. 이곳에서는 매일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봅니다.
어떤 죽음은 평온하지만, 어떤 죽음은 치열합니다.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곁에서, 손을 잡아줄 뿐입니다.
이 글은 제가 만난 한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사랑, 고통, 그리고 수용의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이 어떻게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결혼 후 3개월 만에 암을 진단받았다. 의사는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퍼졌다고 말했다. 믿기 어려웠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신은 이런 장난을 치시는 걸까.
아닐 거야. 무슨 착오가 있겠지. 요즘 병원들, 오진 많다던데. 다시 검사하면 아닐 수도 있어.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병원은 다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아니야. 이건 말도 안 돼. 내 인생이 이제 막 시작됐는데, 이럴 리 없어.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아직 해야 할 게 많은데. 신혼여행도 제대로 못 갔고, 아이도 없고, 부모님께 해드린 것도 없고...
처음엔 세상을 원망했다. 화가 났고, 모든 걸 부수고 싶었다. 왜 하필 나야? 왜?
그러다 문득, 내 뒤에서 조용히 흐느끼는 아내를 보았다.
같이 부둥켜안고 흘린 눈물이 도림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젊으니까 희망을 걸어봅시다.” 의사의 말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항암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의 신혼은 집보다 병원이 더 익숙한 나날이었다.
아내는 병과 싸우는 나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집과 병원을 오갔다. 아직 아이는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만약 아이까지 있었다면, 가는 길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항암 치료가 시작되자 살이 빠지고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나갔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해왔다. 하지만 음식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혔다.
필사적으로 먹어보려고 억지로 한 입을 베어 물었다. 혀끝에 닿는 순간 속이 요동쳤다. 삼킬 수 없었다.
미안해서, 미안해서..... 입을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흘렀다.
아내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그 한마디에 더 미안해졌다.
‘행복하게 해줄게. 나만 믿고 와.’ 결혼식 날, 내 손을 꼭 잡고 웃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내 존재가 아내를 힘들게 한다. 자괴감과 괴로움에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병실 창문 너머,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경적 소리가 멀게 들렸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구나.’
이제 놓아줘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 할까?
아직 살아 있는 내가, 이렇게 쉽게 포기해도 되는 걸까?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게 남아 있는 걸까?
혼란스럽다..................
의사는 호스피스를 권했다.
말기암 환자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했다. ‘죽을 때까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곳은 우리가 살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에 있었다.
‘아, 공기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대학병원에서는 사람들의 북적임과 비명, 기계 소음이 가득했지만 이곳에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치료진도, 환자들도 표정이 밝았다.
고통에 신음하면 치료진이 다가와 진통제를 놓아주고, 손을 잡고 다독여주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러다 가끔은, 너무 힘든 나머지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간호사가 조용히 주사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호스피스란, 고통 없이 편안한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곳이구나.’
죽음은 누구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한다.
죽어가는 이들의 눈빛을 본 적 있는가.
그 두려움에 찬 눈동자를 나는 잊지 못한다.
‘나는 어떻게 죽을까?’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떠나게 될까? 아니면, 평온하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그저 손을 잡아줄 뿐.
하지만 그 손에는 힘이 느껴진다.
아직은 더 살고 싶다고.
무섭다고.
두렵다고.
‘제발, 내게 조금만 더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