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간호사가 전하는 못다한 말들....
“엄마, 내가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한 환자분이 계셨다. 이분은 성격이 호탕하셨다.
간호사가 진통제를 드리거나 간병사님이 간식을 챙겨드리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며 큰 소리로 인사하셨다.
통증이 있을 때도 “아이고, 아파 나 죽네!”라고 말씀하시며 주변을 웃음 짓게 하셨다.
남에게 정이 많고 관심도 많은 분이셨다. 내가 너무 바빠 보이면 “아이고, 간호사들은 너무 바빠. 힘들지. 옆에서 좀 앉았다 가.” 하며 침대 한쪽으로 몸을 비켜주시기도 했다. 그럼 나는 장난스럽게 눕는 시늉을 하며 같이 까르르 웃곤 했다. 바쁜 와중에도 이분 덕분에 나는 웃으며 일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일찍 이혼하신 후, 홀로 딸을 키우며 억척스럽게 장사를 하셨다고 들었다.
“남편이랑 일찍 갈라서고, 내가 뭐 학교를 갔어, 기술이 있어? 세상에 안 해본 일 하나 없이 다 했지….”
따님도 환자분과 성격이 비슷한 듯했다. 가끔 따님이 면회를 오면, 어머니는 퉁명스럽게 말씀하셨다.
“어, 왔나.” “어, 왔다.” “니 혼자 왔나. 김 서방은?” “올라오고 있어.”
그리고 침묵이 맴돌았다. 나는 얼른 사위분이 오시기만을 바랐다. 사위분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얼마나 잘하시는지, 멀리서 보고 있으면 나까지 웃음이 났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딸이 반가우시면서….’
어느 날,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환자분께 물어보았다.
“따님이 오면 좋지 않으세요? 왜 반갑게 안 하시고 퉁명스럽게 대하세요?”
“좋지. 가시나, 자기 아빠 닮아서 성격이 아주 매몰차. 그거 때문에 그렇지 뭐.”
“어머니랑 닮으신 것 같은데….” (쭈글쭈글)
“나? 하하하! 나랑은 하나도 안 맞아. 나는 성격이 이렇게 시원시원한데, 그 가시나는 아주 꼼꼼해. 어릴 때부터 공부면 공부, 회사도 척척 붙고, 못하는 게 없어. 똑부러져.”
“그럼 자랑스러운 딸 아니에요?”
“그치… 근데…….” (침묵)
“미안해서 그래.”
“네?”
“저렇게 강하게 큰 게, 내가 못해줘서 그런가 싶어서.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 나 때문에 짐이 되기 싫어서 그런 것 같아서….”
“아… 그러셨구나….”
딸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드셨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 감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셨던 것 같았다.
‘흠… 좋은 방법이 없을까…?’
주말이 되자 따님이 면회를 오셨다. 나는 어머니께 들은 얘기를 따님께 전했다.
“어머님이 따님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잘 컸다고. 그리고 그렇게 강하게 큰 게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아주 많이 사랑하신대요.”
따님은 내 말을 가만히 들으셨다. 그리고 조용히 “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병실로 가려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화장실로 향하셨다.
나는 따님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코끝이 빨갛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모녀의 대화는 크게 변함이 없었다.
‘서로를 너무 생각하고 사랑하는데…. 누구라도 조금만 더 다가가시면 좋을 텐데….’
시간이 지나 환자분의 컨디션이 점점 나빠지셨다. 처음의 호탕한 말소리도, 웃음도 사라졌다. 이제는 침상에서 생활하시는 시간이 많아졌다.
임종기가 다가왔다. 수간호사 선생님은 따님에게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라고 말씀하셨다.
따님은 울음을 삼키며 어머니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어… 엄마….”
환자분의 숨소리가 따님의 목소리를 듣자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 엄마… 내가… 내가 그동안….”
“….”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
“내가… 엄마한테… 짐인 것 같아서… 그게… 미안해서… 말 못했어….”
“….”
“엄마, 내가… 많이… 많이… 사랑해….”
“….”
환자분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나는 환자분의 얼굴에서 과거의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나는 들었다.
“간호사쌤, 우리 딸이 나보고 사랑한다고 한다. 참 좋다. 다 살았다. 나는 이제 가도 좋다.”
그렇게 몇 분 후, 그분은 임종하셨다.
가족들은 환자분께 못다 한 이야기를 했다. 사위분은 따님보다 더 많이 우시는 것 같았다.
어디 머나먼 그곳에서, 사람들과 둘러앉아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고 계실 것 같다.
“아니, 글쎄! 우리 딸이 나보고 사랑한다고 말하더라고! 하하하! 가는 길에 그 말 들으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슬픈지도 모르고 날아왔네!”
사람들은 같이 웃어주고 동조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참, 따사로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