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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에서 배우는 마지막 사랑"

우리는 왜 후회를 남기고 가는걸까?

by 별빛간호사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간호사로 일한다. 매일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순간을 마주하며, 환자분들의 마지막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참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나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깝지 않을까? 이 이야기들을 나누면 누군가의 마음에도 작은 울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환자분들이 남긴 마지막 말, 그들의 눈빛 속에 담긴 감정, 그리고 그 순간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처럼 삶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한 환자분이 계셨다.

이 분은 자신의 젊은 날을 이렇게 말했다.
“정말 놀 거 못 놀 거 다 했지. 참 후회 돼. 가정에 집중해야 했는데 그럴 질 않았으니…”
“그러시군요…”

결혼 후 아들을 낳고, 가장으로서 가정에 집중해야 했지만, 그는 가정의 책임보다는 자신의 놀음에 더 우선순위를 두었던 삶을 돌아보았다.
“죽기 전에 무엇이 가장 하고 싶으세요?”
“아들이 보고 싶지… 많이 컸을 텐데…”
그는 미소 지으며, “우리 아들 잘 생겼지?”라며 아드님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메세지 창에는 단지 “아들아…”라고만 적혀 있었다.

“많이 보고 싶으세요?”
“응. 한참 클 때 옆에 못 있어 줬어. 참 내가 왜 그랬는지… 후회가 많이 돼…”
많은 시간을 아들 곁에서 보내지 못했던 아쉬움과 후회가 고스란히 담긴 그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많이 자주 우셨던 기억이 난다. 자는 동안에도 계속 누군가를 부르기도 했다.
‘참… 많이 힘드시겠다…’
‘그리고 아들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는 거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저 시간 속에 쌓인 후회와 아쉬움은 한 사람의 인생을 깊이 새겨놓기 마련이다.

우리 호스피스 팀은 조심스럽게 부인에게 환자의 의사를 전달했다.
“oo님이 아드님을 많이 보고 싶어하세요.”
“네…”
“아드님 생각은 어떠세요?”
“… 별로 안 좋아해요. 사실 이 사람과 떨어진 시간도 길고… 아빠와 추억도 많지 않아요…”
“그렇군요… 아무래도 어릴 적 기억이 많이 영향을 미치죠…”
“….”
“네,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연락을 끊었다.

시간이 흘러 임종기가 다가왔다. 환자분은 체인 스토크 호흡을 하며 마지막을 향해 가셨다.

체인 스토크 호흡은 임종의 징후 중 하나로, 호흡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다 점차 끊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리고 병실에 문이 열렸다. 낯선 면회객이었다. 그리고 그가 바로 환자분의 아들이었다.
‘아버님과 눈매가 참 많이 닮았구나.’
아들은 멀찍이 서서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부인분이 다가왔다.
“oo 아빠… 조심히 가… 늦게 와서 미안해… 그동안의 일 모두 잊고 편히 가…”

환자분은 숨을 더욱 몰아쉬었다. 보호자들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부인분은 아들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가까이 오렴.”
아들은 잠시 망설였지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아버지의 곁으로 다가갔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제발… 무슨 말이라도…’라고 생각했다.
아들만큼은 아버지에게 마지막 말을 전해주길 바랐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뒤에야 입을 열었다.
“… 아버지… 아빠…”
“….”
“늦게 와서 미안해요…”
“….”

그 후, 어머니의 손을 따라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날 새벽, 환자분이 임종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3일장이 끝나고, 부인과 아들이 간호사실로 찾아왔다.
“아버지 원망 많이 했는데…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까 그런 마음이 사라졌어요. 마지막 인사 잘 한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수간호사에게 물어보았다.


“수쌤, 왜 아들을 그렇게 오라고 하셨어요? 사실 같이 있었던 시간도 많지 않았고…”

“응. 그렇지. 하지만 나중에 너도 아이를 키워보면 알 거야. 아들이 커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후회는 정말 클 거야.”
“그렇구나…”
“그럼.”

‘아, 하나 또 배웠다. 아직 갈 길이 멀구나....’

나중에 들었지만, 그동안 어렵게 살았을 부인과 아들을 위해 준비하고 남겨두었던 것들이 있었다.

항암 치료 중에도 일을 계속하셨다고… 그렇게 아끼고 모은 재정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사랑과 시간뿐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은 언제나 예기치 않게 끝이 다가오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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