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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을 기다린 이름”

“입양 간 아들이 결국 왔다… 그리고 그 순간,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by 별빛간호사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간호사로 일한다. 매일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순간을 마주하며, 환자분들의 마지막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참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나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깝지 않을까? 이 이야기들을 나누면 누군가의 마음에도 작은 울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환자분들이 남긴 마지막 말, 그들의 눈빛 속에 담긴 감정, 그리고 그 순간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처럼 삶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한 환자분이 계셨다.

임종기였다. 그의 몸은 이미 많은 장기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지 오래였다.
살은 썩어 들어가듯 부패했고, 군데군데 욕창이 생겼다.
반쯤 떠 있는 눈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좀처럼 감기지 않았다.

가끔은 깊은 밤, 앓는 소리 사이로 이름 모를 누군가를 부르곤 하셨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그분의 손을 잡아드렸다.
그 미세한 손끝에 힘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우리 간호사들끼리는 말하곤 했다.

“누구를 기다리시는 걸까요…?
보실 분은 다 보신 것 같은데…”

며칠이 흐른 어느 주말, 환자분의 여동생이 간호사실을 찾아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사실… 어릴 적 외국으로 입양 보낸 아들이 있어요…”

‘그분을 기다리시는 걸까…?’
우리 모두의 마음에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어렵게 아드님과 연락이 닿았다.
그에게 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하자, 처음엔 단호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분은… 저를 낳았을지라도 아버지라 생각한 적 없어요.”
“왜 이제 와서…?”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우리는 그의 마음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병동으로 낯선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이국적인 번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분이다…’

“여보세요.”
“…저, ooo 환자 아들입니다.”
“네, 그간 잘 지내셨나요?”
“네. 아버지는…?”
“여전히 그 상태 그대로세요. 눈을 감지 못하고 계세요… 많이 걱정이에요.”

잠시의 침묵 끝에,
그는 말한다.
“…병원에 가겠습니다.
제일 빠른 비행기로, 다음 주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어려운 결정이셨을 텐데… 마음을 돌리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그런데 저도 이제 아들이 있는 아버지라,
나중에 우리 아이가 이런 상황이 된다면…
지금 아버지를 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며칠 후, 그날이 왔다.
병실 문이 열리고,
그가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눈물부터 흘렸다.
서툰 한국말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나는 조용히 휴지를 손에 쥐어드리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30분쯤 후,
그가 병실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가… 숨을 안 쉬세요.”

그렇게,
그는 눈을 감았다.

길고 긴 몇 주간의 기다림 끝에 그토록 보고 싶던 사람을 마주하고서야, 그는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보고 싶은 이를 만난 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리고 아들의 발걸음 또한, 앞으로의 삶 속에서 아버지를 기억하며
조금은 덜 무겁게 살아갈 수 있기를.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었더라도, 마지막을 함께한 그 시간이 두 사람 모두에게 가장 큰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사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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