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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은 나,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아”

환자분에게 마지막 조언을 받았다. 호스피스 간호사가 전하는 진심.

by 별빛간호사

내 인생의 주인은 나

“남 눈치 보지 말고 살아. 내 삶의 주인은 나야.”

그날은 여름의 어느 저녁 근무였다. 나는 정신없이 병실을 오가며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등에는 땀으로 근무복이 달라붙었고, 하루 종일 서고 뛰었던 발목은 아픔을 호소하며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중 한 환자분이 간식거리를 주시며 말했다.
“이거 먹고 해. 간호사들은 참 바쁘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감사해요. 그런데 저 살이 쪄서… 더 뚱뚱해져요.”

환자분은 나를 흘낏 보며 한 마디 던졌다.
“살찌긴 뭘 살쪄.”
“저 몸무게 많이 나가요. 치마 입고 싶은데 다리가 굵어서 못 입어요… 사람들이 보고 웃어요.”

그러자 그분은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말했다.
“하, 참!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방실이 알지? 가수 방실이, 엉덩이가 크고 다리가 굵어도 치마 입고 다녀. 그런데 그 사람 보고 누가 뭐라 하니? 남들 신경 쓰지 말고, 내 인생 내가 살아. 내가 끌고 가는 거야. 남의 말 신경 쓰지 마라.”

“그분은 가수고 유명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아냐. 그런 껍데기가 중요한 게 아니야. 진짜 중요한 건 네가 네 삶을 살면 된다는 거야. 절대로 네 삶을 남의 손에 넘기지 마라.”

그분은 말하면서 눈에 힘을 주셨고, 그 눈빛은 지금도 내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분은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건축 일을 하셨던 분이었다.
혈액순환이 어려워 부풀어 오른 팔과 다리로 거의 대부분을 침상에서 보내야 했음에도, 그분은 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강렬하고 인상 깊었던지, 나는 그때부터 그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칠 수 없게 되었다.

그분은 또 이렇게 말했다.
“이 병원은 왜 매일 된장국만 나오냐?”
그러면서 자신의 지갑을 꺼내며,
“가서 몰래 짜장면 좀 사와. 간호사쌤 것도 사서 여기서 몰래 같이 먹자.”
그리고는 악당처럼 손가락을 입에 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분은 재미있게 살았다.
병원에서 생일 파티를 준비했을 때, 혼자서 일어서지 못하고 누워있었지만, 마이크를 잡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셨다.
소화가 안 돼 밥은 못 먹으셔도, 짜장컵라면을 드시고는 새벽까지 토를 하셨다.
내가 걱정스레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많이 드셨어요? 조금만 드시지…”
그분은 웃으며 말했다.
“그거 조금 먹어서 맛있겠니? 입에 착착 감기는데, 이때다 싶어서 먹었지.”
“후회되시죠?”
“응.”
“이제 안 드실 거죠?”
“아니 ㅋㅋㅋ”

그분은 정말 유쾌하게 살다 가셨다.

나는 퇴근 전에 항상 그분께 인사드리러 갔다.
그때마다 그분은 손으로 브이를 해보이며 웃으셨다.
하지만 이제 그 브이를 볼 수 없다.
어디에선가 잘 지내시겠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분의 목소리가 내 귀에 생생하게 들린다.
“남 눈치 보지 마라. 내 인생 내가 주인이야.”

그분이 남긴 그 한 마디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졌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누구의 시선도, 누구의 기대도 아닌,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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