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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죽음을 앞둔 환자의 마지막 소원"

호스피스 병원 간호사의 기록

by 별빛간호사

오늘 이브닝 근무를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병동의 공기. 하지만 한 분의 새로운 입원이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분의 인수인계를 받았다. 병명과 히스토리, 차트에 적힌 숫자들과 병의 이름들은 너무 익숙해서 무심하게 넘기곤 했지만, 오늘은 그게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데이 근무 중, 그분은 간호사 선생님에게 이렇게 고백하셨다고 했다.


“선생님, 저는 죽어도… 다시 태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부잣집도, 너무 가난한 집도 말고… 그냥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서요. 공부 열심히 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요, 저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어요. 늘 가족들을 위해 살았어요.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땐 저를 위해 살아보고 싶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그 말을 전해 들으며 나는 그분의 삶을 상상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자기 자신을 뒤로 미룬 채 살아오셨을까.

병을 진단받고 처음에는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슬퍼했겠지.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을 견디고 견뎌, 지금은 담담히 소원을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 말 한마디를 내뱉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고요한 시간을 통과했을까.

죽음은 때로 너무나 가혹하게, 사람을 마지막 시험대 위에 세운다.
그 시험대 위에서 그분은, 단지 자신을 위한 소원을 말하셨다.
그것이 그렇게 뭉클하게 다가오는 건…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도
한 번쯤은 나답게 살고 싶다는.. 그런 간절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문득, 생각해보았다.
'만약 지금, 죽음이 내게 조용히 다가온다면. 그리고 아주 잠깐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아직 많이 부족하고 가진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삶에 아주 조금이라도, 빛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 이 자리에서, 이 직업에서, 이 이름으로…
'누군가의 마지막에 내곁을 내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게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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