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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암이라는 걸 몰라요"

"죽음을 모르는 사람의 웃음은… 너무 밝았다"

by 별빛간호사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이다.
오늘은 병동을 지배하는 어떤 묵시적 진실, 그러니까 ‘거짓말’에 대해 써보려 한다.

"호스피스에 거짓말이 난무한다고?"
고개를 갸웃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진실이다.

대부분 시골에서 살아오신 어르신들은 병원에 가는 걸 꺼리신다.
"괜찮겠지", "지나가겠지" 하며 넘긴 증상이 뒤늦게 심상치않음을 알게 되고,
동네 의원을 찾는다.

운이 좋으면, 곧장 대학병원 진료를 권유받고 그제야 자신의 몸 상태를 짐작하게 된다.
운이 나쁘면, 간단한 약만 받고 돌아오고 만다.

약을 먹어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그제서야 자식들에게 말을 꺼내신다.
“몸이 좀 이상하네.. 자꾸 대변에서 피가 나와..”

“요즘 계속 어지러워… 넘어지기도 하고…”

“피가래가 왜이렇게 나오지..?”
부모라는 자리에서, 참 오래도 숨긴다.

그렇게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손쓸 수 없는 상황임을 알게 되면 호스피스를 권유받는다.

그리고 우리 병동에 도착한다.

환자는 ‘요양병원쯤 되겠거니’ 혹은 ‘이제 치료 받는 병원인가보다’ 여긴다.
가족들은 간호사에게 말한다.
“어머니(아버지)께는 암이라는 사실을 말씀 안 드렸어요. 여기가 호스피스라는 것도 정확히는 모르세요…”

‘하…참, 난감하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아서 퇴원하면, 밭에 가서 고추를 따야지.”
“운동을 해야 기운이 생기지.”
그렇게 오늘도 밥 한 공기를 꾸역꾸역 넘기신다.

하지만 몸은 하루가 다르게 쇠해진다.
환자는 의아해하며 묻는다.
“왜 내 몸이 점점 더 나빠지는 거죠…?”

그리고 결국, 자식들은 의료진과 상의 끝에 진실을 털어놓는다.

그날 오후, 병실은 조용한 침묵으로 잠긴다.

밥차는 그대로 반납되고, 침대는 미동도 없다.
평소보다 통증을 더 크게 호소하신다.
희망이 꺾였기 때문이다.

이제야 마주한 진실 앞에서 그분은 말했다.

“집에 한번 가보고 싶어요.”

의료진을 동행해, 환자분을 집으로 모셨다.

그는 익숙하게 바로 집 앞 마당에 있는 조그마한 밭으로 향했다.
손에 잡히는 풀들을 몇 번이고 쥐었다 놓았다.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그 손도 아는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 마당을 천천히 둘러보시고는
말씀하셨다.

“이제 됐다. 가자.”

병원으로 돌아온 뒤 내가 물었다.

“집에 다녀오셨다면서요. 어떠셨어요?”

“사람도 없고, 귀신 집 같더라.”

“그래도… 다녀오시니 좋으셨죠?”

“…좋긴 뭐가 좋아. 힘만 들고, 이젠 안 가야지.”

며칠간, 병실엔 침묵만이 흘렀다.

그런데 오늘은,
그 병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농담에
환자분은 소녀처럼 까르르 웃고 계신다.

이렇게 웃는 날도 오는구나.
삶은, 결국 그렇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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