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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이가 내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이대로 충분해요."

by 별빛간호사

사람은 누구나 아프면 예민해진다.
육체의 고통은 마음까지 깎아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날카로워진다.

그날, 나는 주사를 들고 환자 곁에 섰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 한 환자분이 입원하셨다.
처음부터 통증이 매우 심했고,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었다.

“뭘 어떻게 해줄 수 있는데요? 날 죽이던가, 재우던가, 하나만 해주세요.”
그 말은… 듣는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루하루가 투쟁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보호자에게도, 의료진에게도 짜증을 내고, 스스로에게도 화를 내던 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출근 후 바쁘게 움직이다가
주사를 들고 있는 내내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눈을 살짝 뜨신 환자분이 내게 말했다.

“땅 꺼지겠어요. 젊은 사람이 뭘 그렇게 한숨을 쉬어요.”
“아… 죄송해요. 제가 그랬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뇨. 그냥 요즘 너무 바빠서요.”

그 짧은 질문이, 나의 입을 열게 했다.
넋두리가 흘러나왔다. (이럴 때마다 내 넉살 좋음이 고마워진다.)

“계속 바쁘고… 너무 힘들고…할 일은 끝이 없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 이렇게 평생 일하다가 정년퇴직하는 걸까…?’”

환자분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왜 벌써 그런 걱정을 해요. 행복 별거 없어요.”

“행복이… 뭔데요?”

그는 조용히,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출근할 때 아내가 ‘잘 다녀와’ 해주는 거,
퇴근해서 아들과 치맥 한잔 나누는 거.
그게 행복이에요.”

“소박하네요…”
“별거 없어요. 그게 전부예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작은 행복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요.
내 역량보다 더 큰 걸 바라니까, 자꾸 부족하다고 느끼게 돼요. 저도 작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네요.”

그는 조용히 내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 나 자신을 다독여줘요. 그만큼 꿈이 있으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예요.”

“나… 자신을 다독여주라고요…?”
“그래요. 스스로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해요.
‘잘하고 있어. 정말 잘하고 있어.’”

“저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당신은 충분해요. 지금 이대로, 잘하고 있어요.”


충분하다.
그 말이, 내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한마디가
내 마음 깊은 곳에 따스한 온기를 퍼뜨렸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길목에 선 환자에게,
나는 오히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충분하다.
당신은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그가 내게 전한 마지막 메시지다.
그리고 이제, 내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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